-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이프덴’
존중 없는 현대 우리 사회 꼬집어
창작진 콤비, 여 내면 세심히 다뤄
출산 뒤 복귀 베테랑 정선아의 힘
다정한 노랫말, 인물 공감대 확대
| 뮤지컬 ‘이프덴’에서 엘리자베스 역을 맡은 배우 정선아의 공연 장면. (사진=쇼노트) |
|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 2023년 대한민국의 사회문제 중 하나는 절벽에 다다른 인구문제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여전히 먼 이야기로 들린다. 기능으로서의 정책만 있을 뿐, 당사자의 삶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다. 뮤지컬 ‘이프덴’(2022년 12월8일~2023년 2월26일,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은 우리 사회가 간과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극은 엘리자베스가 이혼 후 10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오며 시작한다. 사랑에 푹 빠져 이른 나이에 결혼했던 그에게 이혼은 자신을 되찾기 위한 수단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새로운 삶을 위해 ‘리즈’와 ‘베스’라는 두 개의 애칭을 고민한다. ‘이프덴’은 엘리자베스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두 개의 삶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일상의 단조로움을 돌파하고 균형을 찾는다. 작품은 표면적으로 ‘일 vs 사랑’ 얘기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 안에 담긴 세밀한 갈등을 펼쳐놓고 엘리자베스가 겪는 다양한 감정의 혼돈과 변화를 지켜보는 것에 가깝다. 어떤 애칭을, 누구를, 무슨 일을, 어떤 집단을, 아이를 선택할 것인가.
|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 |
|
작품은 엘리자베스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하되, 그와 관계 맺는 인물들의 감정에도 귀를 기울이며 공감과 사유의 폭을 넓힌다. 갑작스러운 임신 앞에서 괴로운 이는 여성과 남성 둘 모두다. 리즈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몸의 변화에 불안해하며 그를 대하는 사회의 냉정한 눈빛을 받아낼 때, 조쉬 역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기대와 두려움 속에 산다. 이제야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베스의 임신중지 선택도, 선택의 순간에서 배제된 스티븐의 서운함도 마찬가지다. 만약을 가정해도, 어느 쪽을 선택해도 삶은 계속되는 법이다. 선택으로 리즈와 베스의 삶은 분명히 달라졌다. 그러나 두 인생 모두에는 사랑의 설렘과 상실의 슬픔, 이웃의 연대와 인간의 성장이 있다. ‘이프덴’은 각자의 선택을 평가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대신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 현재이며, 과거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지금의 행복을 느끼는 삶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브라이언 요 키와 톰 킷(작곡) 콤비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 이어 ‘이프덴’으로 여성의 내면을 세심하게 다뤘다. 다정하게 번역된 우리말 가사들이 인물의 공감대를 높이고, 영상으로 가득 채운 뉴욕의 거리와 회전 무대는 엘리자베스의 걸음을 함께하며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배우들은 작은 소품과 목소리 톤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두 개의 삶을 성공적으로 표현해낸다. 특히 배우 정선아는 ‘이프덴’의 중심이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개인의 변화도 주요하게 작용했지만, 20년 차 뮤지컬배우의 힘이 컸다. 그는 정확한 가사 전달과 흔들림 없는 가창력으로 일상적이며 동시에 극적인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한다. 캐릭터의 대사가 그 자체로 배우의 말이 될 때, 관객도 관객의 역할을 지우고 자기 삶으로 들어간다. 지금의 여성은 무엇을 고민하는가. 뉴욕이든 서울이든 고민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고민의 흔적이 ‘이프덴’에 있다.
| 뮤지컬 ‘이프덴’의 한 장면(사진=쇼노트 제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