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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순직 소방관 유족 두번 울리는 탁상행정

최훈길 기자I 2019.03.12 06:00:00

고 강연희 대원 유족, 위험직무순직 재심 청구
朴정부 순직기각 논란 반복, 결국 인사처 패소
“재해보상법 제정 文정부, 과거정부와 달라야”

고진영 서대문소방서 소방관(소방위)이 4일 세종시 인사혁신처 앞에서 “고 강연희 소방관을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1인 시위를 했다.[사진=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인사혁신처는 119구급대원들의 위험직무 상황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재심까지 부결되면 소송에 나설 겁니다.”

최태성(53) 씨는 지난 4일 소방관 1인 시위 현장에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최 씨는 고(故) 강연희 전북 익산소방서 119구급대원의 배우자다.

강 대원은 술에 취한 시민에게 폭행을 당한 뒤 투병하다 숨졌다. 인사처 소속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는 강 대원에 대한 위험직무순직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인사처 관계자는 “위험직무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현장에서 근무하는 119대원들이 느끼는 위험도와는 거리가 있는 판단이다. 강 대원은 구급차에서 귀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듣고 머리를 5~6차례 가격 당했다.

다른 대원들도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구조·구급 활동을 하던 소방관이 폭행·폭언을 당한 건수는 2012년 93건에서 2017년 200건으로 급증했다. 소방관의 정신과 진료·상담은 같은 기간 484건에서 3898건(2017년 7월 기준)으로 불어났다.

위험직무 순직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순직보상심사위원회는 경남 산청소방서 고 이종태 구급대원의 순직 신청을 기각했다. 이 대원은 벌집 퇴치를 위해 출동했다가 말벌에 쏘여 숨졌다. 인사처는 “벌집 퇴치 등 생활안전활동은 위험직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에도 “인사처가 현장을 모른다”는 반발이 많았다. 결국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윤경아)는 2016년 9월 인사처 패소 판결을 내렸다. 강 대원은 사망 1년여 만에 위험직무 순직으로 인정됐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는 벌집퇴치 등 생활안전활동도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하는 재해보상법까지 제정됐다.

순직한 소방관 유족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일이 반복되서는 안될 일이다. 재심은 국무총리 소속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서 내달 열린다. 인사처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한 소방관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소방관들에게 더이상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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