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부터 데이터 라벨러로 일해온 김민수(40·가명) 씨는 지난해 11월 일을 그만뒀다. 데이터 라벨러는 AI 교육을 위해 각종 데이터에 각주를 다는 일로, 본격적인 AI 시대가 개화하며 설 자리가 좁아졌다.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는 AI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며 데이터 라벨링 단가가 하락하고 일감 역시 감소했기 때문이다.
AI가 진화하며 일자리를 흔들고 있다. AI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며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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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전력 기업인 ‘이튼’은 마이크로소프트의 AI 도구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을 도입해 기존에 1시간 소요됐던 작업으로 10분으로 단축했다. 게임회사인 레디메이드도 AI 기술을 적극 활용하며 기존 5일이 걸렸던 그래픽 디자인 분야 작업을 5시간 안팎에 끝낼 수 있게 됐다.
AI가 업무의 속도를 줄이는 등 업무 생산성을 높이자,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났다. 비효율적인 과업을 AI가 수행하며 직원들은 더 전략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고, 기존보다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인력 수요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김대근 레디메이드 전무는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돼 인력이 더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반면 챗GPT 등장 이후 일감이 줄어드는 직종도 생겨나고 있다. 외국어 통번역사인 조아람(41·가명) 씨는 해외에 진출하려는 기업에서 문서 번역 작업을 해왔지만, 지난해 8월 회사의 권고사직으로 일을 그만둔 뒤 정규직 일자리를 아직 구하지 못했다. 그는 “프리랜서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데 과거와 비교해 단가도 확실히 낮아졌다”고 했다.
실제로 고용보험에 가입한 작가·통번역가(상시근로자 기준)는 2022년 11월 7049명에서 지난해 11월 6564명으로 6.9%(485명)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가 3.6%(53만 3934명) 늘어난 점과 대조적이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으리라는 통상적인 관념과 달리 일자리에 미치는 AI의 영향은 다변적인 모습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인공지능과 노동 연구회’ 좌장인 장지연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AI가 미치는 영향은 업종과 직종별로 다를 수 있다”고 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정보서비스업 취업자는 2022년 7만 9000명에서 2032년 9만 7000명으로 연평균 2.0%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생성형AI 등 인력투자와 데이터 기반 플랫폼 사업 확대로 취업자가 늘어나리란 관측이다. 반면 전문서비스업은 AI를 기반으로 한 재무, 회계 관련 플랫폼 발달에 따라 고용 전망이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AI 산업전환 가늠 쉽지 않아..대비책 필요”
전문가들은 AI 발달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가 있고 동시에 소멸하는 직종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지금부터 이에 대한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가 산업전환을 미리 예측하고, AI시대에 필요한 교육과 인재육성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부 전문가들은 AI 관련 교육 등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도 판단한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업의 AI 활용이 확대가 예상되는 상황을 고려해 사회 전반의 AI 문해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기업에 근로자 대상의 주기적인 교육을 의무화하고, 정규교육이나 직업훈련에 AI와 관련한 기본적인 내용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활용이 확대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가 무조건 근로자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노세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AI를 활용을 확대하며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경우 문제는 오롯이 노동자가 짊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유럽연합은 AI 사용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