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탄소국경세 부과의 근거가 되는 청정경쟁법(CCA)이 도입될 경우 국내 산업계가 향후 10년간 총 2조 7000억원의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2025년부터 이 법이 시행되면 대미 수출 제품 중 원자재에 1조 8000억원, 완제품에 9000억원 등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업종별로는 석유 및 석탄제품(1조 1000억원), 화학제조업(6000억원) 등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됐다.
청정경쟁법은 탄소배출량에 따라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세의 미국 버전으로 2022년 미국 민주당이 발의했다. 수출품 생산 및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유럽이 먼저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미국 버전인 셈이다. 이 법은 공화당 역시 지지하고 있어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2025년부터 철강·시멘트 등 원자재에 온실가스 1t 당 55달러의 탄소세가 부과되며 2027년 이후에는 완제품도 적용 대상이 된다.
이 같은 청정경쟁법은 대미 수출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에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중국 수출이 줄어든 반면 지난해부터 대미 수출은 가파르게 늘고 있는 데다 올해 연말까지는 대미 수출이 22년 만에 대중 수출을 앞설 것이라는 전망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한경협이 한국의 탄소집약도 개선 속도가 주요국들에 비해 저조한 수준이라며 청정경쟁법의 부정적 영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최근 5년간(2016∼2020년) 한국의 탄소집약도 개선 속도(2.4%)는 미국(4.9%), 일본(2.7%) 등에 크게 뒤졌다.
가뜩이나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대미 수출마저 청정경쟁법의 영향으로 위축될 경우 경기침체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정부는 업계 부담 경감을 위한 다각적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적용 유예 등이 가능한지 미국과 적극 협상에 나서고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비율 상향 추이 등을 제시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 관련 업계부터 탄소배출 저감 노력에 적극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