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간 9월 19일 새벽,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금리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관심은 금리 인하의 폭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0.25%p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대세를 이뤘지만, 9월 들어서 0.50%p 금리를 낮추는 소위 ‘빅컷’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빅컷이 단행된다면 이는 미국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최근 발표되는 미국 경제지표들은 경기둔화 우려와 견조한 경기라는 상반된 내용이 혼재돼 있다. 고용지표와 제조업지수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반면 소비는 아직 꺾일 기미가 없다.
미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과 낙관론이 공존하고 있지만, 2025년까지 시계(視界)를 넓혀 보면 경기는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기저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2023년 미국의 국내 총생산(GDP) 성장률은 2.5%를 기록했고, 올해 성장률 컨센서스도 계속 상향 조정되면서 작년과 같은 2.5%까지 높아졌다.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1.8% 내외로 추정되는데 작년과 올해 잠재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성장을 기록했기 때문에 2025년에는 성장률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양호한 소비 역시 미국판 의료보험인 메디케어 등 공적 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가계 저축률도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어 지속성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경기 둔화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2023~2024년 미국 경제의 높은 성장이 오히려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2022~2023년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렸다. 금리를 올리는 긴축 정책에는 경기둔화가 수반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제의 수요 위축을 대가로 인플레이션 억제를 도모하는 것이 긴축 정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앙은행은 심각한 경기 후퇴인 경착륙이 아닌 완만한 경기하강인 연착륙을 목표로 통화정책을 시행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 경기 둔화 그 자체는 중앙은행의 정책이 잘 작동한 결과로 봐야 한다. 문제는 경제가 심하게 나빠지는 경우이다. 이는 정책 실수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경제를 심하게 망가뜨리면서까지 물가 안정을 이루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연준의 긴축 정책이 심각한 경기 후퇴와 금융 위기를 불러왔던 경우가 많았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려 1970년대 내내 지속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진압한 폴 볼커 연준 의장의 초강력 긴축정책은 미국 경기의 급격한 침체를 가져왔다. 1982년 12월 미국의 실업률은 10.7%까지 상승했는데, 이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볼커의 고금리 정책은 국제 사회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미국으로부터 달러 부채를 차입하고 있었던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이 줄줄이 국가부도를 냈다.
볼커의 정책은 그나마 장기간 고착화한 인플레이션을 끊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연준의 긴축이 심각한 경기 후퇴를 불러온 사례는 이를 제외하고도 많았다. 1988~1989년의 금리 인상은 미국 주택대부조합(S&L)의 대규모 파산을 불러오면서 미국 경기의 극심한 침체로 이어졌다. 1994~1995년의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에는 큰 타격을 주지 않았지만 태국과 한국, 러시아로 이어지는 신흥국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다. 또한 1999~2000년의 금리 인상은 닷컴주들을 중심으로 부풀어 올랐던 주식 버블에 파열구를 냈고, 그 후유증은 2000년대 초 미국 경제의 장기침체로 나타났다. 2004~2006년의 금리 인상은 미국 부동산 시장 붕괴의 트리거로 작용하면서 베어스턴스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나타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다.
이런 점에서 보면 9월 FOMC에서 0.50%p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시장은 이를 악재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 둔화 그 자체는 긴축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에 큰 문제가 아니고 주식시장도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연착륙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문제는 경기가 심하게 둔화하는 경우이다. 0.50%p 금리 인하는 경착륙의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연준은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금융완화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금융완화 사이클의 최초 금리 인하 폭이 0.50%p였던 두 번의 사례(2001~2003년, 2007~2008년)에서는 모두 주가가 부진한 모습을 나타냈고, 0.25%p로 금리 인하를 시작한 경우(2019~2020년)에는 주식시장의 성과가 좋았다. 이달부터 시작될 금리 인하 국면에서 빅컷으로 표현되는 큰 폭의 금리 인하는 예상보다 심각한 경기후퇴의 전조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은 빅컷이 단행되면 연준의 정책이 신뢰를 잃었던 2022~2023년의 금리 인상 국면을 떠올릴 것이다. 연준은 2022년 3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금리 인상 직전까지는 당시의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평가절하했다. 그렇지만 물가 상승은 결코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고 뒤늦게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연준은 금리를 한번에 0.50%p 올리는 ‘빅스텝’과 0.75%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잇따라 밟았다. 이런 연준의 행보는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상황을 안일하게 해석하다 요란하게 뒷북을 치는 모습으로 읽혔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경제지표의 악화가 연준의 금리 인하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은 호재로 해석했다. ‘배드 이즈 굿’(Bad is Good)이었던 셈인데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금리 인하보다는 미국 경제의 본질적 흐름에 투자자들은 주목할 것이다. 투자자들은 경제지표에 대해 ‘굿 이즈 굿, 배드 이즈 배드’로 해석할 것이고, 이런 점에서 보면 9월 FOMC에서의 0.50%p 금리 인하는 악재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