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출범 24일 만인 지난 2022년 6월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을 임명했다. 정부 출범 당일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을, 사흘 후 1차관을 임명한 데 비해 한참 늦은 인사였다. 당시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1차관보다 정보통신기술(ICT) 담당인 2차관의 인선이 늦어진 배경에 대해 여러 해석이 제기됐는데, 최종적으로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이던 박윤규 차관의 내부 승진은 결국 조직 안정과 전문성을 높이 산 것으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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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차관은 과기정통부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정책통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박 차관은 행정고시 37회로 법무행정 직군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국무총리실에서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박 차관은 1994년 12월 정부 부처의 정보통신 기능을 흡수해 신설된 정보통신부로 적을 옮겼다. 디지털이나 정보통신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 신설 부서로의 이동이라는 모험을 택한 것이다.
◇사무관 시절, 전자상거래법 법조문 정비 참여
당시 김영삼 정부는 정보통신 부흥을 위해 정부의 역량을 한 곳에 모았지만, 법·제도적 준비는 전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박 차관은 정보통신부로 옮긴 직후 법무행정직의 강점을 살려 정보통신의 법제화 실무를 맡았다. 새롭게 도래하던 정보화 시대에 맞지 않던 법조문을 정비해 신기술이 날개를 달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 것이다.
당시로선 전자상거래(이커머스)라는 개념조차 낯설었던 만큼 법제화를 위해선 돈을 주고받는 방식, 배송 여부 방식 등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상거래에 대해 법조문에 담는 것이 막막했다. 박 차관은 동료들과 함께 이커머스의 법적 근거가 되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등의 법조문 제정 실무작업에 나서 관련 법을 세상에 내놓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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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픈AI의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AI(인공지능) 개발을 둘러싼 글로벌 격전 속에서 한국 기업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주도하고 있다. 법제 전문가답게 박 차관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ICT 정책 중 하나인 ‘디지털권리장전’ 등을 주도적으로 제정하는 등 AI 시대, 국내 기업의 글로벌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지털 권리장전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과 디지털 공동번영사회 실현을 목표로 하는 헌장이다.
박 차관 역시 30년 넘는 공직생활 기간 도중 가장 자부심 있는 정책으로 단연 ‘디지털권리장전’을 꼽았다. 전세계에서 ‘기술 경쟁’에 주력하던 우리나라가 선도적으로 디지털 규범을 제시하며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ICT 위상이 더 높아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도 지난해 9월25일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권리장전 전문을 보고받은 직후 큰 만족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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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디지털 권리장전은 단순히 이벤트성에 그치지 않고 향후 수년간 우리나라가 다양한 디지털 규범에 대한 국제적 논의를 주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윤 대통령의 뉴욕 구상과 그 이후의 디지털 권리장전이 발표된 후인 지난해 11월 ‘제2회 AI 안전 정상회의’ 개최 국가로 선정됐다. 박 차관은 이에 대해 “국제사회가 우리의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 노력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올해도 디지털 권리장전을 통해 새로운 디지털 질서를 안착하고 글로벌 규범 선도에 주력하고 있다. 올해 5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제2차 AI 안전성 정상회의에서 ‘서울 AI 선언’을 발표할 계획이다. 디지털 권리장전의 후속조치로 디지털 신질서 정립 추진계획도 수립해나갈 예정이다.
박 차관은 “꼬맹이 사무관 때 법조문을 일일이 정보화 시대에 맞도록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 AI 중심의 디지털 시대에 국제적 규범을 설계하는 일을 했다는 것은 공직자에게 더없는 보람이자 큰 영광”이라고 감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