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팬오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HMM의 경쟁력을 높여 ‘승자의 저주’ 우려를 씻어낼 것이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최근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 HMM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주요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인수 이후 HMM의 경쟁력 하락은 물론 그룹 전체까지도 어려워지는 승자의 저주가 일각에서 제기된 데 대한 반응이다.
김 회장은 팬오션 인수 이후의 운영경험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팬오션을 경영해보니 욕심부리지 않고 ‘지속성’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팬오션 인수 때도 승자의 저주 이야기를 들었지만 1년 뒤에는 신의 한 수로 바뀌었다”고도 했다.
하림에 대한 우려는 작은 기업이 더 큰 기업을 인수하면서 가져올 수 있는 당연한 우려다. 하림의 자산규모는 17조원으로 HMM의 25조8000억원에 크게 못미친다. 여기에 하림은 보유 현금 10조원의 60% 이상을 인수에 사용해야 하는데 서울 양재동 물류단지 개발사업 등으로 실제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은 수천억원에 불과하다. 시중은행들로부터 투자확약서(LOC)를 받았고, 대규모의 팬오션 유상증자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매각주체에 제안했던 HMM 영구채 주식전환 유예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특히 하림이 강조하는 팬오션 인수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 2015년 하림은 팬오션을 인수하면서 인수금액 1조80억원의 절반 이상인 5680억원을 차입금으로 조달했다. 하지만 HMM은 그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또 팬오션을 2015년 연매출 1조7600억원에서 지난해 6조4000억원으로 규모를 키웠지만 인수 당시엔 이미 기업회생절차로 대부분의 부채를 정리한 상태였다.
아울러 팬오션은 벌크선 운용사로 컨테이너선 운용은 또 다른 세계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특히 내년부터 해운시장 불황이 예상되는데, 덴마크 머스크와 이스라엘 짐라인 등 글로벌 해운사들은 영업적자에 직면했다. 글로벌 컨테이너 운임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초 5000 수준이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1000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하림과 인수전에 뛰어든 공동 주체인 JKL파트너스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앞서 하림은 매각주체에 HMM 영구채 주식전환 유예와 함께 JKL파트너스의 5년 주식보유 조건을 예외로 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를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된 HMM의 지분을 사모펀드가 일정 차익을 내고 털어내는 것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회장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 운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인수전에서만큼은 예외인 것으로 보인다.
무리한 인수라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오는 데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앞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한 뒤 위기를 맞았고, 웅진그룹이 극동건설을 인수한 뒤 해체된 사실을 떠올리고 있다.
승자의 저주가 거론되는 것이 하림 입장에서는 서운하겠지만 그만큼 잘 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섞인 게 사실이다. 하림이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최종 인수까지 성공한다면 부디 국적해운사인 HMM의 오래전 위상을 되살려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