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무역장벽, ‘플라스틱세’ 다가오는데…이제 팔 걷는 한국

김경은 기자I 2022.07.12 07:03:58

독일, 1991년 세계 최초 EPR 도입하며 차별화
고품질 폐PET 선두 일본, 높은 '국민성' 꼽아
한국, 낮은 생산자 부담 '도덕적 해이' 불러
첫 단추부터 해결해야…“수거·선별 인프라 개선 시급”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기후위기 청구서인 탄소국경세에 이어 ‘플라스틱세’가 제2의 무역장벽으로 부상하고 있다. 오는 2024년 플라스틱 규제 국제협약 도입을 앞두고, 한국 정부는 이제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국인 한국의 수출품 가운데 플라스틱이 쓰이지 않는 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단 점을 고려할 때, 선형경제 DNA를 순환경제 체제로 전환할 구조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논의를 선도하는 독일 등 유럽은 자국의 강도 높은 환경 기준을 수입품에도 요구하고 있다. 이는 2024년 법적 구속력을 가진 플라스틱 국제협약 도입을 통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의 경로를 쫓아가 보면 ‘동맥경화’ 지점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독일 마트만 가봐도 차이가 보인다”

“샴푸, 린스 용기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들 상당수가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을 100% 가까이 끌어올린 제품들이 많다.”

독일 마트에 가면 화장품 용기를 비롯해 주요 생필품의 플라스틱 포장재 용기는 이같이 재활용 원료를 사용했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으로 만들어져 있다.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가 아닌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녹색제품을 만들어냈으며, 소비자들의 녹색에 대한 지불의사도 높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4월 기준 국내 유통 화장품 포장재의 64%가 ‘재활용 어려움’ 등급 판정을 받았다. 수출 무대에서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화려한 포장재 개발에 집중한 결과다.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낮은 부담금과 이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독일은 1991년 세계 최초로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시스템을 도입해 소매업자들과 생산자들에게 회수와 재활용 의무를 요구했다. 페트병 보증금제, 일명 판트(Pfant) 제도의 정착을 가져온 중앙집중화된 관리방식도 모범 사례로 꼽힌다. 지난 2월 발간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플라스틱 아웃룩’ 보고서는 “독일의 포장 법령은 플라스틱 재활용의 혁신을 촉진, 이는 같은 기간 다른 국가들과 관찰된 차이에서 설명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유럽이 현재 플라스틱 관련 국제협약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플라스틱 생산 및 유통, 폐기물 처리 등에 대한 높은 시장규율이 적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부영 환경부 독일 주재원은 “독일내 기업들은 정책뿐 아니라 환경에 대한 높은 자기규제를 따르고 있다”며 “하지만 수입품은 이 같은 환경 비용을 내지 않는 데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어 플라스틱 무역장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이 지난해 도입키로 한 플라스틱세는 포장재 플라스틱 발생량에서 재활용된 플라스틱을 제하고 남은 폐기물에 kg당 0.8유로(한화 약 1000원)를 EU에 납부키로 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폐기물 부담금과 성격이 비슷하다. 연간 60억유로(한화 약 7조9100억원)의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국내 플라스틱의 생애 살펴보니…LCA 관리 불가능 생태계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0년 기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1098만2883t으로 이 중 25%가 소각되고, 4%는 매립, 70%가 재활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OECD가 발표한 전세계 플라스틱 재활용률 9%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통계를 신뢰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정부는 폐기물 처리를 위한 ‘올바로’ 시스템을 통해 접수된 폐기물 통계를 기준으로 정책 목표를 세우고 있다. 상당량의 무단투기량이 잡히지 않고, 소각 시 발생하는 에너지 사용분도 재활용으로 잡힌다. 이에 플라스틱에서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10%대 수준으로 낮을 것으로 추정하는 곳도 있다.

국내 정책이 그간 폐기물 관리에 중점을 둔 결과다. 국내에서 플라스틱은 생산부터 폐기·재활용까지 LCA(전과정평가) 추적이 불가능한 품목이다.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탓에 국내에서 생산되는 연간 플라스틱 발생량조차 파악이 어렵다.

플라스틱은 4가지 단일재질(PP, PE, PS, PET)만 사용할 때 재활용이 가장 용이하다. 하지만 필요한 물성 확보를 위해 무한대로 복합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든 복합 플라스틱 제품 중엔 불가연성도 많아 현재로선 자연분해까지 최대 500년을 기다리는 것 말곤 처리방법도 마땅찮다.

일각에선 무분별한 생산의 원인으로 폐기물 처리에 대한 낮은 생산자 부담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10년째 유지 중인 폐기물 부담금 요율은 kg당 150원으로 1000원 상당인 유럽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매출액 5억원 미만의 업체에 대한 EPR 면제의 특혜를 틈타 법인 쪼개기 등 편법도 성행하고 있다.

◇한쪽에선 처치곤란, 다른쪽에선 원재 확보 전쟁통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도 문제다. 국내에서는 2020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자원순환정책 도입이 시작됐다. 반기마다 한 번꼴로 나오는 정책으로 재활용 시장은 현재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한쪽에선 원재의 안정적 확보가 어렵다고 호소하고, 다른 쪽에선 처치곤란한 저급 플라스틱 쓰레기를 해결해 달라는 주장이다.

우선 최말단인 수거·선별 단계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 있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이데일리가 입수한 ‘새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산업계 간담회’ 보고서를 보면 이날 참석한 폐기물처리업계, 중화학기업, 재활용업체 등이 요구한 정책은 공통적으로 ‘수거·선별의 인프라 개선’이 꼽혔다.

SK지오센트릭은 △재활용 플라스틱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안정적 수요·공급 기반의 확보 △폐플라스틱 수거·선별 현대화와 고도화를 위한 투자 확대 등을, 국내 종합 재활용업체 1위인 알엠은 △투명페트병 수거 체계 개선 △지자체 재생원료 사용 의무 부과 등을 주장했다. 반면 한국폐기물협회 측에선 선별시설의 부하를 줄이고, 운영 효율을 높여 달라고 요구했다. 분리배출이 잘된 폐기물은 선별 시설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재활용업체로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종합화학기업 A사 관계자는 “재활용 봉투에 버려야 할 것들이 마구 재활용으로 버려져 섞인다”며 “수거·선별 과정의 선진화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페트 플레이크 가격은 한때 우리나라의 3배 수준에 달할 정도로 오염이 적은 고급품이다. 10년 이상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제도가 정착되면서 깨끗하게 씻어서 배출하는 국민성과 거점별로 대형 수거·선별시설 한 두 곳이 체계적으로 관리한 결과다. 반면 우리나라의 재활용선별업체는 전국 341곳으로 매출 규모도 평균 9억원 미만의 영세한 업체들이 대부분이고, 고도의 선별시설을 갖추기 힘든 조건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선별시설 고도화 등이 정책과제로 추진되고 있지만, 업체의 영세성으로 투자가 쉽지 않아 단시간 내에 개선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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