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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경영권 승계)에서 비롯 된 게 사실입니다”라며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특히 그는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라며 4세 승계 불가 원칙을 직접 밝혔습니다.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1938년 대구에서 문을 연 삼성상회(현 삼성물산(028260))를 모태로 한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의 3세 경영을 끝으로 자녀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공개 발언은 재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상당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고 이병철 선대회장도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그의 자서전 ‘호암자전’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고생스러운 기업경영의 일을 자손들한테까지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며 “사업 탓으로 숱한 파란과 곡절을 겪으면서 갖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고민의 이유를 적고 있습니다. 이어 “1950년 6·25동란 중 기업의 회생을 위해 겪었던 갖은 고생과 1960년 4·19 혁명 후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혔고 1961년 5·16으로 모든 경제인은 죄인시 되고 재산의 국가환수 조치가 있는 등 온갖 정치적 수난을 겪어야 했다”며 “이러한 험난한 과정을 끝까지 극복한 사람은 아직도 기업경영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창업자인 이 선대회장에게도 사업은 녹록지 않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1997년 출간한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자신의 후계자가 될 21세기 미래 경영자가 갖춰야 할 조건을 △지혜 △혁신 △정보력 △국제 감각 등 네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이 회장은 “21세기형 경영자는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창조할 수 있어야한다”며 “변화에 대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조직 내에 전파할 수 있는 철학자의 경륜이 요구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회장을 이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처음 경영자 수업을 시작한 것은 2001년 상무보로 승진해 임원이 됐을 때부터입니다. 그 직전 해인 2000년, 이 부회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부회장의 나이는 32살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이 부회장은 이 인터뷰에서 후계 구도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나는 주주로서의 역할만 할 뿐이다. 삼성은 지금까지도 계속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직접 경영하는 것보다 전문경영인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0년 5월, 이 부회장은 자녀에게 더이상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오너 경영이 없는 삼성의 미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지 그 변화를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