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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반도체 산업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초(超)격차 기술이 극자외선(EUV)입니다. EUV는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아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빛으로 광원의 파장 길이가 ‘13.5 나노미터’(nm·10억분의 1m)에 불과합니다. 기존 공정 기술인 불화아르곤(ArF·193㎚) 광원보다 길이가 ‘10분의 1’미만이라 더 세밀한 노광(반도체 웨이퍼 위에 패턴을 새기는 작업)이 가능합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10나노 미만의 초미세공정이 가능해, 더 작지만 고성능인 반도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EUV 반도체 공정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등 2곳 뿐입니다.
EUV가 처음 개발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인 1981년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와 스탠퍼드대에서 장(長)파장 엑스(X)선을 반사 원리를 이용한 연구결과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듬해 일본 NTT의 기노시타 박사가 이를 이용한 축소투영 결과를 발표하면서 반도체 산업에서 EUV의 응용가능성이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공식적인 차세대 노광기술로서 미국 국립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기초연구가 시작됐고, 본격적인 핵심기술 개발을 위해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경쟁과 협력이 이뤄졌습니다. 우리나라는 1998년 한양대에서 이뤄진 소규모 개인연구사업이 EUV의 시초였습니다.
이처럼 EUV의 시작과 발전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이 주도했지만 우리나라는 20년 가까이 뒤늦게 출발하고도,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실제 양산에 성공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SK하이닉스(000660)도 올 하반기 완공 예정인 이천 M16 공장에 들어설 ‘EUV 전용라인’에서 D램 양산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삼성전자는 일찍부터 EUV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관련 투자를 지속해왔습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전 세계 EUV 노광기 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네덜란드 ASML로부터 2010년부터 시험 생산용 장비를 도입했습니다. 또 이재용 부회장은 차세대 노광기 개발 협력을 위해 2012년에 ASML 지분 3%(현재 1.5%)를 인수하고, 핵심 설비 파트너로서 협력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삼성은 지난해 일본이 수출 규제를 했던 EUV용 포토레지스트(PR·감광액)도 미국 ‘인프리아’라는 반도체 소재 분야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공급선 다변화를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삼성은 2014년 인텔과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등과 공동으로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인프리아에 470만 달러(약 55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삼성벤처투자는 또 2017년 2350만 달러를 펀드 형태로 인프리아에 추가 투자했습니다. 현재 삼성벤처투자는 인프리아의 주요 투자자로서 이사회(전체 11명)에도 1명의 이사를 두고 있습니다. 올 들어서도 지난 2월 20일 삼성벤처투자와 인텔캐피털, SK하이닉스, TSMC 등이 공동으로 3100만 달러(약 380억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진행, 생산규모 확장과 본격적인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EUV 기술도 해결해야할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네덜란드와 일본, 미국 등에서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이른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입니다. 기술 난이도가 매우 높아 ASML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노광기를 빼더라도 EUV용 PR과 포토마스크, 펠리클 등 핵심 소재·부품과 이들의 검사 장비 등의 국산화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모범적인 방역과 우수한 진단키트 등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EUV 분야에서도 양산 기술은 물론 소·부·장 분야까지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것으로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