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정부와 국민의힘 고위 인사를 연이어 만나 우리 군의 통수권 문제에 우려를 보였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군 통수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등 각료들이 줄줄이 수사 대상에 오르는 등 국정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자 안보와 직결된 군 통수권 문제를 걱정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골드버그 대사와 만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미국측으로부터 ‘우리는 누구와 대화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직접 받았다”고 밝힌 데서 드러났다.
2만 5000여명의 군인과 그 가족이 한국에 있는 미국에 한국의 안보 문제는 민감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 외교 사절과 가족을 보낸 다른 많은 수교국들의 속내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군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통수권 공백뿐 아니라 지휘 계통 붕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김용현 국방장관이 구속된 데 이어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등 고위 장성들이 무더기로 수사를 받고 있다. 수일 전까지만 해도 국가 안보의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일부 장성급을 포함한 계엄군 지휘관들 중에서는 유튜브나 언론 등에 자기 입장을 밝히는 이들도 속출했다. ‘양심 선언’이란 평가가 많지만 기강을 걱정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모두가 정치 외풍이 군을 흔든 탓에 생긴 일이다.
내각에서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경찰 수사를 받는 등 계엄 선포 전후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10명이 모두 수사 대상이다. 한 총리는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으로부터 내란죄 혐의로 경찰에 고발돼 피의자 신분인 상태다. 대통령 궐위 시 권한 대행 1순위의 총리마저 이 지경인 상황에서 안보 차질과 군 통수권 공백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정도다.
국회가 윤 대통령에 대해 14일 다시 탄핵 표결한다지만 안보와 치안만큼은 공백이 없어야 한다. 정국 주도권을 쥔 더불어민주당이 특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주한 미국대사의 안보 우려가 왜 거대 야당에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나. 안보가 무너지고 치안이 흔들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베트남 등 많은 국가의 과거가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