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위기 종이빨대 업체 대표 인터뷰
5000평 부지 텅 비어 적막감 흘러
빨대 쌓여 있어야 할 창고만 덩그러니
"수십억 손실 위기에 눈앞이 캄캄"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2주 전에 종이 빨대 생산기계가 저희 공장에 들어왔어요. 공교롭게도 이날 정부가 플라스틱 빨대 사용 규제를 철회했고요. 기계를 돌려보지도 못하고 철퇴를 맞은 거죠.”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에 위치한 종이 빨대 제조 업체 ‘네이처페이지’ 공장 전경. 공장 가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텅 비어 있다.(사진=이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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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기도 포천 소홀읍 공장에서 만난 정종화 네이처페이지 대표는 한숨을 내쉬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정 대표는 이날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모든 준비를 해왔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며 “규제 시행을 불과 2주 앞두고 정부 정책이 바뀌니 그저 눈앞이 캄캄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정 대표의 종이 빨대 공장은 ‘올스톱’ 상태다. 이데일리가 둘러본 5000평에 달하는 부지는 적막감이 흘렀고, 부지 내 건물에도 종이 빨대 생산기계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 대표는 대당 1억 5000만 원에 달하는 종이 빨대 생산기계를 총 20대 계약했다. 여기에 매달 수백만 원에 달하는 건물 임대료까지 부담해야 한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 계획을 믿고 과감히 투자한 것이지만, 정책의 급작스러운 선회로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실제 네이처페이지는 농심·롯데 등 대기업과 납품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었지만, 정부가 규제를 철회한 뒤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정 대표는 “대출금 이자와 운영비·인건비 등 매달 고정비만 수천만 원”이라며 “최대한 버텨봐야 한두 달”이라고 성토했다. 만약 사업이 물거품이 된다면 최소 20억 원 이상의 손실을 보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 정종화 네이처페이지 대표(사진=정 대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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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일회용품 규제 철회의 배경으로 자영업자 부담 완화를 꼽았다.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비싼 데다 쉽게 눅눅해져 소비자들의 불만을 받는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 대표는 “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빨대의 차이가 5~6원밖에 나지 않는다”며 “카페 사장님들이 한 달에 더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2만 원 안팎”이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종이 빨대 사용이 어느 정도 정착된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들도 플라스틱 빨대 규제의 ‘무기한 연기’를 플라스틱 빨대를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쉽게 눅눅해지고 좋은 점은 별로 없다. 그러나 환경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쓰려고 했던 것 아니냐”며 “만약 정부가 ‘6개월 뒤’, ‘1년 뒤’ 시행한다고 했다면 수요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이 빨대 업계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 규제를 원안대로 시행 △금융 지원 및 실질적 보상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 대표는 “판로가 사라지면 기계들은 전부 고물이 될 것”이라고 거듭 착잡함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가 하는 일은 그래도 예측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배신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정부 말만 믿고 사업에 쉽게 뛰어들어선 안 되겠다는 것이 이번 사건에서 깨달은 교훈”이라고 덧붙였다.
| 빨대 제조 업체 ‘네이처페이지’ 공장 내부. 직원 없이 기계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사진=이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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