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목소리]②갈수록 진화하는 수법…악성 앱 통해 전화가로채기도

장순원 기자I 2019.04.15 06:00:00

보이스피싱 3분의 2가 대출빙자형
금리싼 대출 전환해주겠다면서 피해자 양산
취업난 청년층 유혹해 범죄 가담시키는 경우도

(그래픽=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1. 50대 자영업자 A씨는 “00저축은행의 저리(低利) 대환 대출이 가능하니 모바일로 신청하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자 단비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최근 장사가 안돼 높은 대출이자를 어떻게 갚을지 막막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장 대출전용 응용프로그램(앱)을 깔고 대출을 신청했다. 이후 대출상담원이 “기존 대출상환을 위해 알려주는 계좌로 1000만원을 입금하라”고 하자 사기가 의심스러워진 A씨는 확인을 위해 일단 전화를 끊고 해당 저축은행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아까 상담원이 다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안심하고 기존 대출상환 자금을 알려준 계좌로 송금했다. 상담원이 “며칠 안으로 대출승인 연락이 갈 것”이란 얘기를 전했으나 일주일째 연락이 없었고 결국 ‘보이스피싱’ 덫에 걸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2. “이모 바빠?” 결혼한 조카에게 오랜만에 카카오톡 안부인사를 받은 60대 B씨는 반가운 마음에 카톡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 중 조카가 급한 일이 있다면서 은행 마감 시간 전에 되돌려 줄테니 100만원만 대신 이체해달라고 했다. 비밀번호를 잘못 적어 인터넷뱅킹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B씨는 오랜만에 연락한 조카가 어렵사리 부탁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별 의심 없이 돈을 보냈다. 이후 연락이 없는 조카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보이스피싱 수법이 갈수록 교묘하게 진화하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노인이 타깃이었으나 지금은 사회 초년생부터 50~60대까지 광범위하게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메신저피싱 활개

가장 널리 알려진 보이스피싱 수법은 가족을 납치했다고 협박하거나 검찰이나 경찰, 금융감독원 직원이라고 속이고 돈을 송금하라는 사칭형이다. 대부분은 조선족이 어눌한 우리말을 쓰며 송금을 요구하는 수법으로 뇌리에 각인돼 있다. 이런 수법이 알려지며 약효가 떨어지자 최근에는 세련된 서울 어투를 써가며 수사나 조사에 협조해줄 것을 요구하고 때로는 가짜 홈페이지를 활용해 피해자들을 속이는 일이 많아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금감원 담당자를 바꿔가며 불안감을 증폭하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을 유도해 피해자들을 현혹하는 일이 많다.

일선경찰서의 한 수사과장은 “사칭형 보이스피싱 일당들이 예전에는 노인들을 타깃으로 했는데 지금은 젊은 여성을 노린다”며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범죄자의 전화를 받으면 당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 수단은 전화·SMS 뿐 아니라 메신저, 불법금융사이트·앱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문자메시지·카카오톡 등의 그럴듯한 문구로 악성 앱 설치를 유도한 뒤, 소비자가 악성 앱에 감염된 휴대전화로 은행 콜센터에 확인전화를 걸면 보이스피싱 조직이 전화를 가로채 받고 피해자를 속이는 전화가로채기 수법이 대표적이다. 보이스피싱에 속은 사람은 자기가 평소에 걸었던 은행 등 금융기관의 진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자기가 건 전화가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가로채기됐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한다.

SNS가 활발해지면서 메신저피싱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메신저피싱이란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타인의 메신저 아이디를 도용해 로그인한 뒤 등록된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금전을 탈취하는 신종 범죄수법이다. 메신저피싱의 피해액(216억원)이 전년(58억원) 대비 272.1%(158억원) 증가했을 정도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의 대포통장을 틀어막자 작년말 P2P 금융을 활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발생했다”며 “아무리 보이스피싱 대책을 내놓아도 범인들이 우회로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경기불황의 그늘‥가장 약한고리 노린다

최근에는 신규 대출 또는 저금리 전환대출이 가능하다고 현혹해 대출금 또는 수수료를 뜯어가는 ‘대출빙자형’ 범죄가 급증하는 것도 특징이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10건 중 7건이 이런 유형이다.

사기범들은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기존 대출을 햇살론을 포함해 저금리 대출상품으로 대환해 주겠다며 접근해 대포통장으로 기존 대출금을 넣도록 유도하는 게 대표적인 수법이다.

또 정부정책 자금을 받기 위해서는 캐피털회사 등으로부터 고금리 대출을 이용했던 이력이 필요하다면서 피해자를 설득하기도 한다. 경기불황 속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서민들이 고금리로 내몰리고 있는 가운데 저금리를 제시하는 보이스피싱에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범죄 조직들이 ‘재택알바’, ‘구매대행 알바’ 등을 내걸고 취업준비생이나 주부들을 꾀어 보이스피싱 사기에 연루하는 경우도 많다. 계좌를 빌려준 뒤 사기범이 지정한 계좌로 송금하거나 현금으로 인출해 사기범 일당에게 전달했다가 범죄에 연루되는 식이다.

김철웅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국장은 “대출빙자형 등의 보이스피싱은 경기불황 속에서 가장 어려운 계층을 노린 악질 범죄”라며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누구든 돈을 보내라고 하면 확인하는 습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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