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위대한 노래 리스트를 만들 때도 대중가요는 저 옛날의 명곡들 속에 마치 의무처럼 ‘근래’의 노래들을 욱여넣는다. ‘최신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먼 과거의 작품인데 지금에도 명작으로 고평된다면 거기에는 요즘의 시선이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 뮤직이 얼마 전 ‘베스트 앨범 100’을 선정했다. 스트리밍 횟수를 기준으로 하지 않았다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팝 음반 100장이라 해도 될 것이다. 공개방식도 깜찍했다. 100위부터 1위까지 카운트다운 방식으로 5월14일부터 매일 10개씩 발표했다. 결과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음악관계자들 사이에선 록 전성기의 영웅들, 이른바 비틀스, 밥 딜런, 롤링 스톤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은 몇 위를 차지했을까, 100위 안에 비틀스는 몇 장의 앨범이 들어갔을까, 2000년대 이후 최신작들은 얼마나 선정됐을까 등이 관심사였다.
일단 애플의 선정에 대한 음악팬들의 평가는 흥미롭다기 보다는 ‘이게 뭐냐’는 실망과 비판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시대의 키워드인 백인보다는 흑인, 남자보다는 여성으로의 이동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기적으로 근래 작품들이 너무 많다는 게 부정적 의견의 요지이자 핵심이다. 록의 황금기인 1960년대 앨범이 10개밖에 안 되는데 2010년대 앨범을 무려 17개나 올린 것은 최신 집착과 과거 홀대가 명백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작년에 나온 테일러 스위프트의 ‘1989’(테일러의 버전) 앨범도 떡 하니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높은 순위인 18위였다.
비틀스의 앨범도 2개에 그쳤고 ‘가장 위대한 로큰롤밴드’인 롤링 스톤스와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밥 딜런은 초라하게 겨우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최소 40~50년간 명반 리스트에 단골 1위였던 비틀스의 1967년 앨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밴드’는 아예 100위 안에 끼지도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달라지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이 앙케트는 경험이라는 이름의 ‘응축된 시간’을 날려버리는 것 같아 아쉽다.
대중가요는 그간 최신에 대한 중시와 동시에 또 하나의 숭배 코드가 존재했다. 잠시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유행가의 숙명에서 탈피하기 위해 시대불변의 가치를 발하는 오래된, 이른바 명작을 받드는 작업이었다. 최신성과 정반대 성질의 역사성이 동석하게 됐다. 그 덕에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록, 팝, 포크의 걸작이 늘어났다. 타임리스, 올디스 벗 구디스, 레트로, 온고지신 등은 이 작업에 동원된 유서 깊은 수식들이었다. 하지만 온라인과 디지털 환경에 처하면서 언제부턴가 이런 흐름이 사라지고 있다. 대신 ‘근래’ ‘요즘’ ‘지금’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최근과 업데이트에 대한 치중은 거의 강박 수준이다. 서구의 한 평론가는 “2020년대 들어서 이곳저곳의 베스트 선정은 우리를 최신성의 광란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프라인 시대에 상당한 신뢰와 권위를 쌓은 격월간 잡지 롤링 스톤, 차트의 상징 빌보드에 이어 이번 애플 뮤직의 선정을 보면 그 얘기가 틀리지 않은 듯하다. 만약 문제가 될 경우 바꾸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슬쩍 관여한다. 우리의 인식체계는 그러면서 더욱 불안정해진다. 음악 본연의 예술성 아닌 산업이나 시대와의 관계를 지나치게 응시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 음악계도 갈수록 당장의 흐름에 집착하는 양상을 보인다. 어렵사리 획득한 대중가요의 품격을 유지하는 방향을 버리고 찰나에 귀속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아름다운 예술이 아닌 포악한 산업의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