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정수 성주원 기자] 최대 수조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우리의 국가핵심기술을 주변국에서 하루 1건 이상 빼가고 있다. 심지어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복제해 수백명에 달하는 핵심인력을 영입하는 사례에 징역형을 살 것을 뻔히 알고도 범행을 이어나가는 사례까지 나온다.
안동건(51·사법연수원 35기)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장은 21일 “과거에는 개인의 이직과 취업을 위해 산발적으로 기술을 유출한 경우가 다수였다”며 “최근 확인된 사안으로는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내부자들, 기술탈취를 원하는 경쟁 외국기업의 회유 등을 통해 조직적, 대규모 차원으로 기술 유출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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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기술유출 사례로 삼성전자(005930) 반도체 공장 BED 등 복제 시도 사건이 꼽힌다. BED는 반도체 제조가 이뤄지는 공간에 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술이고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
해당 사건은 삼성전자 반도체 분야 임원 출신 A씨가 중국 등에서 거액의 투자를 받아 중국 소재 반도체 제조회사를 설립하고, 국내 반도체 회사 출신 핵심인력 200명을 고용, 빼돌린 기술로 중국 시안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똑같은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려 했다. 다행히 대만 전자제품 생산업체가 약정한 8조원 투자가 불발되면서 공장이 건설되진 않았다. 다만 검찰은 유출된 기술이 최대 수조원 상당의 가치를 가진 영업비밀이라며 삼성전자가 최소 3000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안 부장검사는 “기존 개별 반도체 기술 유출과는 범행 규모와 피해 정도의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중요한 사건”이라며 “전 국민에게 반도체 기술의 해외 유출의 심각성에 대해 경종을 울린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의 반도체 세정 장비 기술을 중국에 넘기려 한 형제 사건 △삼성디스플레이 ‘엣지 패널’ 기술 유출 톱텍 사건 등도 꼽았다. 세메스 사건의 경우 앞서 동생이 두 차례에 걸쳐 기소돼 재판을 통해 중형(1심 징역 9년, 2심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음에도 오로지 금전적 이익을 위해 형사처벌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재차 범행을 저질렀다. 톱텍(108230)의 경우 공동개발 영업비밀이라도 상대방 동의 없이 무단으로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경우 영업비밀 누설에 해당된다는 기준을 제시한 사례다.
안 부장은 “최근 외국대학의 연구개발 사업 참여, 자문중개 업체 유료자문 서비스 등 외관상 적법해 보이는 계약, 서비스를 가장한 기술유출 시도들도 확인되는 상황”이라며 “수원지검은 첨단산업보호 중점검찰청으로 피해기업과 국가의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산업기술 유출범죄에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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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출 범죄는 하루 1건 꼴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나 유형의 증거를 찾기가 어려워 입증이 어려운 범죄에 속한다. 이에 대검은 수사지휘와 지원 체계를 개편, 지난해 수원지검의 기소 비율을 끌어올렸다.
대검찰청이 집계한 지난해 총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379건으로 집계됐다. 최근 5년간 추이를 보면 2019년 376건, 2020년 405건, 2021년 378건, 2022년 348건 등 매년 평균 약 380건씩 발생하고 있다. 안 부장은 “전국 검찰청에서 기술유출 관련 사건을 처분한 건수 자체로는 기술유출 사건이 증가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다만 검찰에서 혐의를 입증하고 구속 또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긴 비율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산업기술 유출 379건 가운데 구속 또는 불구속 구공판은 총 65건으로 비율은 전체의 17.1% 수준이다. 2019년에는 전체 376건 가운데 35건으로 비율이 9.3%에 불과했다. 2021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이 검찰에 넘긴 사건 수가 줄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2021년(12.4%), 2022년(11.8%)과 비교해도 5%포인트 이상 늘었다.
안 부장은 “대검이 2022년 과학수사부에 기술유출범죄 수사지원센터를 설치해 반부패·강력부에서 담당하던 기술유출 범죄 수사지휘를 과학수사부가 전담하도록 했다”며 “또 수사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수사지휘와 지원, 첩보분석, 유관 기관과의 협력 등이 이뤄지도록 조치하면서 기소 비율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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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지휘부 개편 조치에는 이원석 검찰총장의 의중도 반영됐다고 한다. 특히 이와 더불어 대검 과학수사부 사이버수사과에서 양형 기준이 상향될 수 있도록 2022년 말부터 외부 연구기관에 연구과제도 발주했다.
과거 양형 기준에는 산업기술보호법상 산업기술 침해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양형 기준을 두는 데 불과할 뿐 아니라 2019년 법이 개정돼 각 침해행위에 대한 법정형이 상향됐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가장 높은 양형 기준인 가중영역조차 최대 4년(국내 유출) 내지 6년(국외 유출)으로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 법정형(국내 유출 10년, 국외 유출 15년)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문제였다.
안 부장은 “기존 선고사례 분석 등을 통해 기술유출 범죄군에 대한 양형 기준 강화 필요성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해 작년 3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했다”며 “다행히 법원에서도 필요성을 공감하고 최근 발표된 내용과 같이 양형 기준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은 데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월 대법 양형위는 산업기술 국내침해 최대 권고형량을 기존 6년에서 9년으로, 산업기술 국외침해 최대 권고형량을 기존 9년에서 15년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이에 국가핵심기술의 국외 침해의 경우 최대 18년까지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양형인자 중 가중인자가 감경인자보다 2개 이상 많으면 1.5배까지 상한을 올릴 수 있음에 따른 것이다.
안 부장은 “향후 검찰에서는 새로운 양형 기준을 반영해 엄정한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보다 철저한 입증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라며 “개정되는 양형 기준은 피해규모 산정 관련 지표로서 입증 가능한 인자들을 반영한 것으로 안다. 앞으로 그와 같은 인자 발굴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