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루프 개인전 ''d.o.pe''
프랙털 패턴 합성해 카페트에 출력
"오늘날 이미지 생성과정 생각해보길"
4월 13일까지 PKM갤러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길이 290cm에 달하는 거대한 카펫 위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무늬는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화려함을 뽐내며 뻗어나가는 모습이 알 수 없는 세포의 분열같아 보이기도 한다. 무엇을 떠올리든, 인식 너머의 세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독일의 사진 거장 토마스 루프(66)의 신작 ‘d.o.pe’가 관람객에게 선사하는 신선한 자극이다.
| 토마스 루프의 ‘d.o.pe’ 연작(사진=PKM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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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루프가 20년 만에 국내에서 신작을 선보인다. 4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d.o.pe’에서다. 작품명이자 전시명인 ‘d.o.pe’는 올더스 헉슬리의 자전적 에세이 ‘지각의 문’(The Door of Perception)에서 따왔다. 헉슬리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화학적 촉매제를 통해 의식을 확장할 수 있다고 봤다. 루프는 헉슬리의 이같은 생각에 동조하면서 자연에서도, 인공적으로도 발견되는 프랙털(fractal, 일부 작은 조각이 전체와 비슷한 기하학적 형태) 구조를 작품에 반영했다.
토마스 루프는 “이번 신작들은 어떤 카메라도 쓰지 않았기에 사진이 아니다”라며 “1970년대 히피들의 반문화 운동, 약물을 통해 환상에 빠져들고 예술을 탐구하는 ‘사이키델릭’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 토마스 루프 개인전 ‘d.o.pe’ 전시 전경(사진=PKM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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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는 1980년대부터 초상사진 연작으로 이름을 알렸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칸디다 회퍼 등과 함께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거장 가운데 한 명으로 언급된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일본 만화책 이미지를 가공해 인화한 서브스트라트 연작을 비롯해 포르노 이미지의 픽셀을 보이지 않도록 처리한 ‘누드 사진’ 시리즈, 천체사진을 바탕으로 한 ‘별’ 시리즈 등으로 국제무대서 주목받았다. 40여 년간 선보인 사진 연작 시리즈만 25가지가 넘는다. 루프는 자신의 작업스타일에 대해 “각기 다른 가지가 자라난 나무와 같다”고 비유했다. 구상적인 작업이 나오기도 하지만, 추상적이고 비사진적인 작업이 나오기도 한다는 이유에서다.
‘d.o.pe’ 연작은 그가 2022년부터 몰두해 온 시리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낸 프랙털 패턴을 겹치거나 합성해 대형 카펫 위에 출력한 것이다. 평면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지에서 색다른 깊이감을 줄 뿐 아니라 프랙털 구조를 더 몽환적이고 신비하게 보이게끔 한다. 패턴을 보고 있자면 우주인지, 피부 조직의 이미지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루프는 “작품을 보면서 오늘날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사람들이 이미지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가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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