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생활지도가 ‘아동학대’로”…판결문 48건 전수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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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간 싸움을 중재하다 아동학대 누명을 쓴 교사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으로 근무하던 교사 A씨는 학생들 간의 싸움을 말리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2018년께 학생끼리 싸우는 과정에서 한 학생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양팔을 잡았다가, 이 학생이 팔을 빼는 과정에서 교사 손톱에 의해 팔에 상처가 생겼다. 이를 근거로 해당 학생의 학부모는 A씨를 신고했고, A씨는 4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A교사가 겪은 일 외에도 비일비재했다. 서울 금천구의 한 중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교사 B씨는 아동학대 혐의로 1심에서 600만원을 선고 받았다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B씨는 2018년께 굽어 있는 모양의 상형문자를 가르치면서 ‘남자는 허리가 생명이니까 허리가 건강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해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준 이유로 아동학대범이 됐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학생들이 오히려 “그러면 성행위에 관련이 된 것 아니냐”라고 말하자 교사가 “거기까지는 제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고 말하는 증언 등이 밝혀지면서, B씨는 2022년 무죄를 받았다.
경북 경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C씨는 학생들에게 ‘잊힐 권리’를 가르치다가 아동학대범으로 몰렸으나 무죄를 받았다. 그는 2020년 5월께 한 학생이 온라인 수업을 통해 ‘잊히다가 뭐에요’라고 묻자, C씨는 “물론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네 전 남친이 네가 나오는 야동을 찍었는데 그게 인터넷에 풀렸을 경우 내용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그게 잊힐 권리”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성적 폭력 등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고, 결국 1년여 송사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 재판 과정 정신적·금전적 피해도…“무고성 고소·고발 막는 제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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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혐의로 재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사 단계에서 조사를 받는 교사들 또한 많다. 실제 경기교사노조가 지난 3월 전국 시도교육청별로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해 집계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고발돼 조사를 받은 사례는 총 1252건에 달했다. 이 중 무혐의 종결이나 불기소 처분이 절반이 넘는 53.9%(676건)였다. 같은 기간 전체 아동학대 사건 무혐의 비율이 14.9%인 것을 감안하면 억울하게 고초를 겪는 교사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경기 일산의 한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 D씨는 “송사란 게 결국 나의 문제도 되긴 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문제여서 수업시간마다 다들 조심한다”고 말했다. 충남 천안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E씨도 “교무실에서 선생님들끼리 ‘퇴직까지 송사에 휩쓸리지 말자’고 서로 안부를 주고 건네 받는다. 수사와 재판을 받는다는 게 나도 힘들고 주변 모두가 힘든 일이어서 역으로 고소하는 것은 꿈도 못 꾸는 게 현실”며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하윤수 부산시 교육감은 “(나중에 아동학대가) 아니라고 밝혀지면 아닌 것이겠지만, 선생님으로선 그 과정이 너무 길고 고통스럽다”며 “학교 전체가 쑥대밭이 돼 버린다”고 토로했다.
막무가내식 아동학대 신고에 시달리는 문제가 해결되려면 관련 법률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전제상 공주교대 교육학과 교수 “아동학대처벌법 등을 통해 무고성으로 교사에 대한 고소·고발이 많아지면서 교사들의 정신적, 금전적 피해가 많아지고 있다”며 “이러한 고소·고발이 법원으로 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법원으로 넘어갔더라도 무고 수준으로 그치면 그에 책임이 따르는 근거 조항 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