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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은 강원 영월과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 사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해발 1027m, 면적은 715㏊이다. 백두대간 줄기인 내지산맥(內地山脈)에 솟아 있는 큰 산이지만 능선이 비교적 완만해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등산로 길이는 총 8.1㎞ 구간이며, 소나무와 신갈나무, 굴참나무, 기타활엽수 등이 혼재돼 있다. ㏊당 축적은 57~96㎥의 건강한 숲으로 2023년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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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의 900여m 지점에는 고구려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태화산성(泰華山城)이 있다. 이 산성에는 가슴 아픈 설화가 있다. 옛날 어느 집안에 남매를 키우는 어머니가 성 쌓는 내기를 시켜 이기는 자식을 키우기로 했다. 아들인 왕검에게는 정양리의 돌성을 쌓게 하고, 딸은 태화산의 흙성을 쌓게 했는데 어머니가 보니 딸이 아들보다 먼저 완성할 것 같아 흙성을 무너뜨리자 딸은 흙더미에 깔려 죽고 말았다. 이후 왕검성은 지금도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지만 태화산성은 무너졌다는 전설이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온다.
태화산성을 지나 100여m를 더 올라가면 정상을 만날 수 있었다. 태화산 정상에 서면 조망이 뛰어나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남쪽에는 소백산 자락 각 봉우리와 월악·금수산이 한 눈에 들어왔고, 북쪽 신갈나무숲 사이에선 아담하게 자리잡은 영월읍 시가지가 내려다보였다. 동쪽 기슭을 따라 우회하며 남서쪽으로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은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올리게 했다.
태화산 끝자락 해발 210m 지점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회동굴인 고씨동굴이 있었다. 1969년 천연기념물 219호로 지정된 이 동굴은 고생대 대석회암통에 속하는 지층으로 4억~5억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총연장이 3㎞에 달한다. 고씨동굴은 임진왜란 때 인근 지역에 거주하던 횡성 고씨들이 난리를 피해 숨어있던 곳이라 해 붙여진 이름이다. 동굴이 위치해 있는 영월군 하동면 진별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예밀리에는 아직까지 횡성 고씨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그간 태화산은 원주 치악산과 단양 소백산 등 인근 지역 명산들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에 선정된 데 이어 블랙야크가 선정한 100대 명산에 포함되면서 산을 찾는 등산 동호회나 가족단위 방문들의 발길이 부쩍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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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일대 거주하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만든 태화산마을의 성공 사례가 널리 알려지면서 산촌을 거점으로 하는 지역경제·관광 활성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태화산 인근 3개 마을이 공동으로 만든 영농법인인 태화산마을은 폐교를 리모델링해 휴식과 체험을 하는 태화산 자연체험학교를 조성한 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특히 매년 계절별로 농작물을 수확하고, 직접 수확한 텃밭 농작물을 요리교실에서 바로 조리해 맛보는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연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편식 교정과 바른 식생활을 지도해 자연식품과 친숙해지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농림축산식품부가 실시한 2023 농촌관광사업 평가에서 체험, 음식, 숙박 모든 부분 1등급을 받아 으뜸촌으로 지정됐다. 으뜸촌 선정은 영월군 마을 중 최초다. 전국 329개소 농촌체험휴양마을 중 단 31개소만 으뜸촌으로 선정돼 그 의미가 크다. 태화산마을 박윤미 사무장은 “태화산을 중심으로 3개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태화산마을을 설립했다”며 “초기에는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과 식사에서 농·산촌 체험으로 많은 프로그램을 개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봄철이 되면 감자, 고구모, 옥수수, 고추, 호박 등의 파종부터 수확한 뒤 수확한 제철 작물을 요리까지 같이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라면서 “아이들이 직접 키우고, 먹을 수 있는 재미를 비롯해 식생활 교육까지 한곳에서 할 수 있다는 점이 모두를 만족시킨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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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은 영월에 새롭게 둥지를 튼 임업후계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도 제공하고 있었다. 김월태(64) (사)한국임업후계자협회 영월지회 회장은 충북 충주에서 통신업을 하다 임업후계자가 된 사례이다. 김 회장은 “2005년경부터 귀촌을 준비했고, 실제 영월에 정착한 것은 2009년이었다”면서 “산양삼을 우연히 알게 됐고, 농약이 없는 순수한 삼을 한번 생산해 보자는 심정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산양삼 재배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정말 힘들었다”며 “이제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분들도 있다 보니 어느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앞으로는 산양삼을 홍보하는 동시에 귀촌후 임업인이 되고 싶은 분들에게 조언이나 도움을 드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임업후계자협회 영월지회에는 190여명이 등록돼 있고, 실제 활동 중인 회원들은 60여명이다. 김 회장은 “지역에 임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산업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특히 숲 경영 체험은 임업인들에게 좋은 방향이지만 각종 규제에 막혀 이 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대대적인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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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명산이자 명품숲이 산촌경제를 살리고, 지역소멸을 막는 현장을 보며, 우리나라의 산촌 정책이 앞으로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생각보며, 태화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