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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4000억달러를 밑돌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 양석준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은 1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소위 국가 경제의 ‘안전판’으로 불리는 외환보유액이 감소하자, 일각에서는 과거 외환위기 당시를 회상하며 외국인 투자자 이탈과 대외신인도 하락 우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양 연구위원은 한은에 몸담은 34년간 국제국과 외자운용원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국내 외환시장 최전방에서 활약했을 뿐 아니라 외환시장 개입과 외환보유액 운용 경험까지 두루 갖춘 외환시장 전문가다.
우선 양 연구위원은 “한은과 정부가 특정 레벨을 방어하기 위해 과도한 시장개입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뗐다. 지난해 연말 상황이 이를 입증한다는 설명이다. 작년 4분기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국내 수출 둔화 우려, 정치 리스크 등이 겹치며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이에 당국이 1500원선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개입을 했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작년 연말 외환보유액이 소폭 증가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 환율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고점 매도세 등으로 상단이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며 “현 외환당국은 자의적으로 외화보유액을 소진할 정도로 무분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최근 외환보유액이 감소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있다. 양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가 발동되면 여기에 한은과 체결한 외환스와프 거래가 활용될 수 있으므로 환율이 (환헤지 발동 조건 이하로) 하락하지 않는 한 외환보유액은 일정 금액씩 소진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이로 인해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가 깨질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일부 자산이 외환보유액의 테두리에서 잠시 벗어나 1조달러가 넘는 순 대외금융자산으로 이동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를 통해 시장에 풀린 달러 역시 범위를 넓혀 보면 결국 대외 자산이고 거래기간 만료 시 다시 외환보유액으로 전량 환원되기 때문이다.
양 연구위원은 또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화자산 중에는 외환보유액에 편입시키지 않은 자산들도 상당하다”며 “외환보유액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한국투자공사(KIC)를 통해 운용되는 대체 자산의 경우 외환보유액에 포함되지 않는데, 지난해 말 기준 KIC의 대체자산은 순가치기준 대략 450억달러가 넘는다.
이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국제기구에서 제시하는 적정 수준을 밑돌고 있다는 우려 대해서도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부터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을 정량 평가가 아니라 선진국과 같은 ‘스트레스 테스트’ 방식의 정성 평가로 보고 있다”며 “올해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광범위한 그럴듯한 충격에도 충분하다’고 평가받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