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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CEO를 지낸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26일 이데일리 전화 인터뷰에서 제2·제3의 이건희 같은 거목을 키우는 방안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처장은 “이 회장이 남기고 간 것은 세계로 가는 과감한 도전 정신”이라며 “앞으로도 삼성 등 우리 기업들이 과감히 도전하고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20여년 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변화를 통해 제2 도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전 처장은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연구소장·정보통신총괄 인사팀장(전무), 삼성광통신 대표 등을 거쳤다. 그는 삼성코닝·삼성SDS·삼성전자 등에서 인사를 담당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누구보다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
이 전 처장은 “이건희 회장은 ‘세계와 경쟁하자’, ‘첨단기술에 도전하자’는 두 가지 메시지로 정면승부를 한 사람”이라며 “이 회장이야말로 삼성을, 우리나라 기업을 세계의 한복판으로 보낸 사람”이라고 돌이켰다.
이같은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가시밭길이었다고 이 전 처장은 회상했다. 당시 삼성 임원진은 시작부터 난관을 겪었다. ‘세계와 경쟁하라’고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직원들 대부분이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굴지의 외국 기업과 경쟁하면 백전백패한다”는 패배 의식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전 처장은 “당시 이건희 회장은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며 “‘신경영’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사장단을 소집해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삼성 신경영을 꺼내 들었다.
이 전 처장은 “‘패배 의식을 버리고 세계와 경쟁하자, 세계 최고를 지향하자’는 마음가짐을 갖자는 게 신경영 취지”라며 “삼성 직원들의 태도·자세를 세계의 눈높이에 맞추는 시도였다”고 풀이했다.
첨단기술을 연구하는 전초기지로 삼성종합기술원을 운영한 것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는 게 이 전 처장의 분석이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이병철 회장이 1987년에 설립한 이공계 분야 연구소다. 이 전 처장은 “삼성은 첨단기술을 얻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다”며 “삼성이 세계 굴지의 스마트폰·배터리 기술을 얻은 것은 삼성종합기술원의 갖가지 연구가 밑바탕이 됐다”고 전했다.
‘신뢰경영’도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이 전 처장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과감한 투자 결정과 과감한 업무 이양이다. 반도체에 과감하게 투자했고 사람을 믿고 일을 맡겼다”며 “사람을 믿는 신뢰 경영을 했기 때문에 이기태·황창규·권오현 등 인재들이 나올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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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건희 회장 이후의 삼성은 어떤 모습일까. 이 전 처장은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승계 과정, 상속세 등이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 부회장 이후 미래의 삼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며 “삼성은 이제 국민 기업이자 한국 브랜드를 가진 세계기업이다. 한 개인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세계적 경영을 하는 시스템 기업”이라고 진단했다.
이 전 처장은 삼성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답게 대처하고, 정부도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게 삼성 앞에 놓인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건희 회장 취임 당시 9조9000억원이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다.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커졌다.
이 전 처장은 “그동안 삼성은 공과(功過)에 대해 일정 정도 거리를 두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전략으로 대처해 왔다”며 “앞으로는 공과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잘한 것은 적극 알리고 고칠 것은 분명히 고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 전 처장은 “삼성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우리나라에 10개 이상 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자”며 “정부는 우리 기업이 세계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애로사항·불공정을 겪지 않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처장은 “애플, 샤오미, 화웨이 등 삼성을 추격하는 해외 기업들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우리 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걸림돌을 제거해주는 등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소소한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대승적인 지원 방향으로 접근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처장은 “이건희 회장이 남긴 숙제는 미래 먹거리 문제”라며 “꽃피는 인재들과 함께 인공지능(AI)·4차산업혁명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부터 미래 먹거리에 대비하는 것이 대한민국호의 튼튼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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