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소리와 함께 ‘찰칵’ 셔터음이 들린다. 하지만 사진사는 없다. 스튜디오에는 오로지 사진 찍는 사람과 조명, 카메라만이 존재한다. 사진사 없는 사진관. 요즘 트렌드로 떠오른 ‘셀프 스튜디오’다.
하얀 배경에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미소 짓는 증명사진은 옛날 이야기다. 요즘 세대에게 증명 사진은 형형색색의 배경을 두고 몸을 사선으로 틀거나 고개 각도를 기울여 마음껏 포즈를 취하며 자신을 기록하는 ‘화보’같은 존재다.
개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콘셉트의 사진관이 성행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러한 사진관들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예약조차 하기 쉽지 않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는 2030의 ‘나나랜드’ 트렌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만나 ‘사진’을 매개로 발현됐다.
‘나’를 표현하는 방식...컬러 증명부터 셀프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콘셉트의 사진관들은 ‘나’에게 집중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다양성,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취한다. 이같은 점이 ‘나나랜드’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았다. 나나랜드는 사회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개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특징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 중이다.
개성 있는 사진관의 대표주자는 ‘시현하다’다.
지난 2016년 문을 연 시현하다는 하얀 배경에 경직된 자세로 찍는 증명사진의 판도를 바꿨다. ‘누구나 고유의 색이 있다’를 슬로건으로 자신을 잘 표현하는 색을 배경으로 골라 다양한 자세에서 증명사진을 찍어 개성을 표현한다.
사진을 찍기 전 작가와 대화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는 키워드를 고려해 색깔을 정한다. ‘사랑스러운’, ‘고요한’, ‘당당한’ 등 여러 가지의 형용사들을 조합해 어울리는 배경색을 선택한다.
최근 시현하다에서 사진을 찍은 홍연주(27·여)씨는 “세월이 흘러가는 그때그때의 내 모습을 남기고싶어 증명사진을 찍기로 결심했다”며 “천편일률적으로 예쁜 모습으로 보정하기보다 내 본모습과 느낌은 그대로 남기면서 자연스럽게 보정해 주셔서 감동 받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다양한 색상의 배경이 담긴 증명사진이 유행하면서 비슷한 유형의 촬영을 진행하는 사진관들도 생겨났다. 인기 있는 사진관의 경우 예약 창이 열리면 1분만에 한달치 촬영분 예약이 마감되기도 한다.
사진사 없이 스스로 사진을 찍는 ‘셀프 스튜디오’도 각광받고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셀프 스튜디오 ‘포토매틱’은 연예인들도 찾는 스튜디오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들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찍는 진정한 나를 위한 셀프 스튜디오’를 모토로 한다.
셀프 스튜디오에서는 조명과 카메라가 세팅된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마음껏 사진을 찍으면 된다. 장수나 포즈에 제한도 없다. 원하는 대로 리모컨 버튼을 눌러 사진을 찍고 화면을 통해 촬영본을 바로바로 확인한다. 15분 촬영(2인 기준)에 7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예약이 쉽지 않다.
포토매틱 관계자는 "주로 20대 여성층과 커플, 친구, 가족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스튜디오에 방문한다"고 전했다. 그는 "사진사가 없다 보니 오히려 부담없이 편하고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며"원하는 톤과 무드를 선택해 다양한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도 인기를 끌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친구들과 우정 사진을 찍기 위해 마포구 상수동에 있는 셀프 스튜디오에 다녀온 노영섭(27·남)씨는 “친구들끼리 찍으니 훨씬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며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과 편안한 내 모습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셀프 스튜디오의 장점을 설명했다.
SNS 영향...강력한 자기표현 수단된 ‘이미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촬영하는 사진관의 콘셉트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인위적인 조명보다 자연스러운 조명 아래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는 자연광 스튜디오, 지친 현대 여성들을 위해 공주·여배우·영화 속 주인공 등을 콘셉트로 하는 사진관이 그 예다.
매년 스냅사진과 콘셉트 사진 등을 촬영하는 김민정(24·여)씨는 “새로운 콘셉트의 사진관이 유행할 때마다 찾아가는 편”이라며 “매년 달라지는 내 모습을 기록하고 나만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사진에 열광하는 2030세대를 끌어오기 위한 마케팅을 펼친 기업도 있다.
현대카드는 지난 8월 한달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현대카드 바이닐앤플라스틱 1층 한구석에 사진관을 만들었다. 한 팀당 60초를 주고 제한된 시간 내 리모컨을 활용해 셀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 해시태그를 포함한 게시글을 작성하면 추첨을 통해 상품을 주는 이벤트도 함께 진행했다.
현대카드의 마케팅은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일명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사진을 매개로 2030을 브랜드 공간으로 발걸음하게 해 브랜드 친밀도를 높인 전략이었다.
김영재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SNS의 확산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사진과 같은 이미지가 자리매김했다”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셀프 스튜디오 등 사진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청년층 사이에서 유행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냅타임 정다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