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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두려운 판자촌 주민들 “올해도 억수로 온다는데 어쩌나”[르포]

황병서 기자I 2023.06.09 06:00:00

서울 판자촌 나루·하훼마을 가보니
작년 물난리 ‘악몽’, 올해도 폭우 예고에 시름
“배수로 넘치고 하천 범람할까 무서워”
“인프라 대비하고 주민에 상황대처 교육해야”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작년에 집 안까지 토사가 쓸고 들어와 얼마나 고생했는데…올해도 비 억수로 내린다고 하니까 가슴 철렁해요.”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판자촌인 ‘나루마을’ 모습.(사진=황병서 기자)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판자촌 ‘나루마을’에서 만난 이모(67)씨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지난해 폭우가 쏟아졌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날 정도다. 지난해 8월 이 지역에 시간당 100mm에 달하는 비가 퍼붓자, 판자촌 옆 운동장의 흙이 집으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와 덮쳤다. 담배꽁초와 각종 쓰레기로 막힌 배수로는 삽시간에 불어난 강수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로 물과 흙이 범벅이 됐다. 이씨는 “임시방편으로 흙이 쏟아져 내리는 벽에 컨테이너 문짝을 구해와 덧댄 상태”라며 “작년에 구청에서 모래주머니 등을 제공해주긴 했지만, 올해 여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름이 본격화하기도 전부터 이씨와 같이 서울지역의 판자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기상청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3개월(6~8월) 기온 전망’에 따르면 올해 여름은 평년보다 많은 비가 예상되고 있어서다. 특히 올해 7월과 8월은 강수량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각각 47%, 43%로 예측됐다. 더군다나 지난해 서초 등 강남 지역의 판자촌 주민들은 큰 물난리를 겪으며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낸 터라, 이 같은 재해가 또다시 반복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씨 등 7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나루마을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면서 사업재원으로 쓰기 위해 확보해 놓은 체비지(개발이 보류된 땅)다. 서울시가 소유하고 있고 주민들은 체비지를 무단 점유한 자에게 부과하는 체비지 변상금을 지불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각종 공공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준비한 땅이다보니 주거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럽게 얽혀 있는 지붕 위 전선은 감전사고가, 관리가 되지 않는 흙벽은 쓸려내림 사고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이 마을에서 1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70)씨는 “우리가 체비지 변상금을 내면서 떳떳하게 살고 있는데도 구청에 무언가를 고쳐달라고 요청하면 들은 척도 안 한다”며 “그러면서 각종 과태료를 안 낸다고 하면 귀신같이 붙여놓고 간다”고 했다. 이어 “배수로에 물이 넘칠까 봐 다산콜센터에 10번 넘게 전화하니 구청에서 나와서 청소를 해줬다”면서 “폭우 같은 재난에 대비를 제대로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화훼마을 모습.(사진=황병서 기자)
이 같은 상황은 지난해 물난리를 겪었던 송파구 장지동 하훼마을도 다를 바 없었다. 하훼마을은 1960년대 무허가 판자촌으로 형성된 곳으로, 현재 1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재개발을 목적으로 구매한 사람을 제외하곤 60~7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이 마을도 지난해 폭우로 집마다 물이 들이닥치며 큰 피해를 봤다. 이 마을에서 40년 넘게 살았다는 박모(78)씨는 “비가 집 안으로 무릎까지 오면서 인근 지역으로 대피했었다”며 “올해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하천이 범람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1989년부터 35년째 거주 중인 최모(79)씨는 “지난해 물난리를 겪고 난 후 구청에서 나와 지반을 강화한다고 하천에 돌을 다져놨는데 오히려 물길을 막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며 “작년처럼 또 피난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식 셋을 키운 이모(65)씨는 “지난해 물난리를 겪은 후로는 비가 내릴 때마다 인근 지역에서 사는 딸이 전화를 한다”며 “올해는 비가 많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딸이 벌써부터 안부전화를 계속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수해 피해를 줄이려면 지자체에서 주민들에 상황대처 교육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구청이나 시 차원에서 수해가 발생했을 때 주민들이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미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며 “모래주머니 공급 등 미리미리 최대한 피해를 당하지 않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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