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빗소리·바람소리·새소리 들으며 짙은 댓잎향에 ‘숲’며들다

강경록 기자I 2021.06.11 06:00:00

부산 기장군 철마면 미동마을 아홉산 숲
400여년간 문씨 일가가 지키고 가꾸어 와
금강송, 맹종죽, 편백, 참나무 녹음으로 뒤덮여
5만여평 숲에 댓잎 부비는 소리에 힐링
초여름 빗소리 들으며 걷는 맛도 색달라

부산 기장군 철마면 미동마을에는 한 일가가 400여년 간 길러온 ‘아홉산 숲’이 있다. 이 숲에는 맹종죽 숲을 비롯해 금강소나무와 참나무, 편백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부산 기장군 철마면 미동마을. 이 마을에는 한 일가가 무려 400여 년간 길러온 숲이 있다. 이 숲이 자리한 곳은 철마면 연구리와 이곡리, 일광면 용천리와 경계를 이루는 아홉산. 이 자락 아래에는 남평 문씨 일가가 무려 9대에 걸쳐 지켜온, 그리고 지키고 있는 ‘숲’이 있다. 금강송이며, 참나무며, 편백이며, 맹종죽이 뒤덮고 있는 숲이다. 분수도, 인공적인 꽃길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숲. 규모도 자그마치 52만㎡(15만 7000여평). 나무를 스치는 바람, 점점 짙어지는 나무향과 풀향, 새들의 소리와 댓잎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만 가득한 곳이다. 긴 세월 지키고 가꿔 온 문씨 일가의 고된 노동의 흔적도 있다. 이 모든 시간이 정성으로 쌓인 숲으로 비를 맞으며 들어간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미동마을에는 한 일가가 400여년 간 길러온 ‘아홉산 숲’. 이 숲에는 맹종죽 숲을 비롯해 금강소나무와 참나무, 편백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특히 비오는 초여름 대숲을 거닐때는 되도록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임진왜란 피해 들어와 일제강점기에도 지켜온 숲

아니나 다를까. 주말이 가까워 오자, 어김없이 비가 또 내린다. 비 내리는 날의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두가지. 비를 피해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실내로 들어가거나, 또는 비 내리는 풍경으로 직접 들어가는 방법이다. 부산 기장의 아홉산을 찾은 이유는 후자다. 비 오는 날의 숲은 짙어진다. 숲의 색도, 향기도, 그리고 빗속을 걸어가는 연인의 마음도…. 그래서 비 오는 대숲에서는 되도록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댓잎으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와 조심스레 소리를 내어서다. 때로는 교향악단의 웅장한 행진곡처럼, 아니면 경쾌한 왈츠마냥, 어느 재즈바의 몽환적인 선율처럼… 그렇게 습기 머금은 대숲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조금씩 풍경의 일부가 되어 간다.

여행길은 혼자여도 좋지만, 때로는 동행자가 있는 것도 좋은 법. 오랜 지인이자, 부산관광공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부산 지리와 역사에 밝은 최부림 씨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그는 퇴직 후 ‘재미난투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미동마을에는 한 일가가 400여년 간 길러온 ‘아홉산 숲’. 이 숲에는 맹종죽 숲을 비롯해 금강소나무와 참나무, 편백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에게 이 숲이 가진 이야기를 청했다. 이 숲의 시작은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산에서 살던 남평 문씨 일가는 난리를 피해 철마면 웅천 미동마을로 옮겨와 숲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곳에 대숲을 일구고 금강송·편백·참나무 등을 심었다. 그렇게 40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큰 위기도 여러차례 있었다. 가장 큰 위기는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들이 아홉산 숲의 나무를 베기 위해 들이닥쳤다. 일제가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나무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남평 문씨의 일가 어른들은 일부러 놋그릇을 숨기다 들켰다. 일제는 놋그릇을 뺏었고, 남평 문씨 어른들은 조상들 제사를 어떻게 모시냐며 땅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이에 일본 순사들은 놋그릇만 가지고 슬며시 도망치듯 집을 나갔다고 했다.

최근에도 큰 위기가 있었다. 숲을 관통하는 임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기장군이 아홉산을 홍보하면서 여행객들이 몰려서다. 이후 반세기의 고요를 간직했던 아홉산 숲은 고기 굽는 냄새와 행락객들의 음주·가무로 몸살을 앓았다. 심지어 트럭을 몰고 와 대나무를 베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야생난은 자취를 감췄고, 희귀식물은 뿌리째 뽑혀 갔다. 결국, 문씨 일가는 아홉산 숲에 철조망을 치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2년여에 걸쳐 숲 둘레에 2.5km 길이의 철조망을 세웠다. 이후 숲은 조금씩 살아났다. 문씨 일가는 2003년 3월 숲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학술적 목적으로만 민간의 입장을 허락했다. 같은 해 9월 아홉산 숲의 올바른 활용을 위한 ‘아홉산 숲사랑 시민모임 추진위원회’를 만들었고, 10여 년이 지난 2015년 3월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미동마을에는 한 일가가 400여년 간 길러온 ‘아홉산 숲’. 이 숲에는 맹종죽 숲을 비롯해 금강소나무와 참나무, 편백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최근 이 숲에서는 맹종죽 숲을 배경으로 드라마 ‘더 킹 영원한 군주’를 촬영하기도 했다.
◇맹종죽·금강송·편백…숲의 향연에 빠져들다

이제 아홉산 숲을 본격적으로 걸어볼 차례다. 매표소를 지나면서 숲의 향연이 시작된다. 조금 걷자 가장 먼저 금강소나무가 반긴다. 하늘을 뚫을 기세로 선 금강소나무는 두 팔 벌려 안아도 부족하다. 남평 문씨 가족 묘역을 지나면 금강소나무가 또 한 번 장관을 이루며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영남 일원에 수령 400년에 이르는 금강소나무가 드물 뿐더러,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한 흔적 하나 없이 잘 가꿔 116그루나 보호수로 지정됐다.

금강소나무 군락지 앞으로는 맹종죽 숲이다. 굿터와 평지대밭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최근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를 촬영했다. 드라마에서 평행 세계로 넘나들던 차원의 문(당간지주)이 맹종죽 숲을 배경으로 한 넓은 터에 있다. 포토존으로 자리매김한 이곳에서는 이전에도 여러차례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했다. ‘군도: 민란의 시대’, ‘대호’, ‘협녀, 칼의 기억’ 등이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미동마을에는 한 일가가 400여년 간 길러온 ‘아홉산 숲’. 이 숲에는 맹종죽 숲을 비롯해 금강소나무와 참나무, 편백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평지대밭은 별도의 이름을 붙인 맹종죽 숲으로, 어둑어둑한 대나무 밀림에 두 사람이 걸을 만한 오솔길이 나 있어서 잠시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 하다.
굿터를 지나면 개잎갈나무와 맹종죽이 마주 보는 ‘바람의길’을 지난다. 아홉산숲에서 가장 시원한 길이다. 이 길을 지나면 ‘대호’를 촬영한 서낭당.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 길은 편백과 삼나무 숲을 거쳐 평지대밭으로 이어지고, 오른쪽 길은 참나무 숲을 지나자마자 평지대밭이다.

‘평지대밭’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붙인 이 맹종죽 숲은 1960~70년대 부산 동래지역 식당에서 잔반을 얻고 분뇨차를 불러 거름을 내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어둑어둑한 대나무 밀림에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만한 오솔길만 나 있어서 잠시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더 킹’에서 주인공 이곤(이민호 분)이 말을 타고 달리던 곳이 바로 ‘평지대밭’이다. 좁은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하늘을 가릴 정도로 큰 맹종죽이 3만 3000㎡(약 1만 평)가 넘는 공간에 빼곡하다. 맹종죽 단일 종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숲이라고 한다. 이 길을 걸으면 평행 세계로 들어가는 듯 신비롭다. 대숲을 가득 채우는 빗소리도 너무 좋고, 비좁은 대숲을 딱 붙어 걸어가는 연인의 뒷모습도 애틋하다. 대숲에 일렁이는 바람 소리와 댓잎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결혼 행진곡마냥 경건하다.

평지대밭을 지나면 굿터 맹종죽 숲 입구에서 지름길을 따라 내려갈 수 있다.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긴다’는 마음으로 아홉산숲을 조성한 남평 문씨 일가의 종택(관미헌), 거북 등딱지처럼 생긴 희귀 대나무(구갑죽), 여름이면 분홍빛 꽃을 피우는 100년 된 배롱나무 등도 만나볼 수 있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미동마을에는 한 일가가 400여년 간 길러온 ‘아홉산 숲’. 이 숲에는 맹종죽 숲을 비롯해 금강소나무와 참나무, 편백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평지대밭은 별도의 이름을 붙인 맹종죽 숲으로, 어둑어둑한 대나무 밀림에 두 사람이 걸을 만한 오솔길이 나 있어서 잠시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 하다.
◇여행메모

△부산의 특급호텔들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해운대나 서면, 기장 쪽에 대부분 몰려 있다. 하지만 부산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은 금정구에 자리한 농심호텔이다. 역사만 무려 50년이 넘었을 정도. 한강 이남 최초의 호텔이라고도 부른다. 농심호텔로 이름을 바꿔 단 것은 지난 2002년 8월. 이전까지는 1970~80년대 신혼여행지로 유명했던 ‘동래관광호텔’이었다. 지금은 디럭스, 럭셔리, 스위트 룸 등 240실을 보유한 특급호텔로 변신했다. 이 호텔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세 곳. 하나는 동래온천을 즐길 수 있는 ‘허심청’과 독일 전통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허심청브로이’, 제철 식재료로 한식 정찬을 맛볼 수 있는 ‘내당’ 등이다. 특히 호텔 투숙객(2인)에게는 허심청 온천 무료 이용권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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