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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이데일리가 입수한 더불어민주당의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현재 기재부의 예산 기능을 국무총리 소속 ‘기획예산처’로 신설해서 넣고, 기재부의 명칭은 ‘재정경제부’로 변경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직제 개편도 이뤄진다. 기획예산처는 예산·기금의 편성·집행·성과관리에 관한 사무를 보는 기능을 맡게 되는데, 장관과 차관 각 1명씩 두는 안이 거론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의 모습인 셈이다.
다만 이 같은 안은 계엄과 탄핵정국에 따른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대선 공약’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 때 기재부 개편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기재부가 예산 권한으로 다른 부처의 상급 기관 노릇을 하고 있다”며 “기재부로부터 예산 기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기재부에서 예산기능을 분리한 내용을 골자로 한 발의안을 여러 의원이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고 현재 당내 공감대도 형성됐다”며 “다만 조기 대선 시 대선공약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
◇계엄사태에 기관간 ‘견제-균형’ 대두
기재부 분리론은 지난 2023년, 2024년 예산 결산 및 재정운용 과정에서 결손이 생긴 세수를 추가경정예산(추경) 없이 일명 ‘기금 돌려막기’로 메웠다는 비판이 크게 일면서 또 한 번 고개를 들었다. 기재부는 세수 부족분을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외국환평형기금(외평)·주택도시기금·국유재산관리기금과 예비비 등 불용액 등으로 충당해왔다.
이 같은 ‘돌려막기’가 국가재정법, 공적자금상환기금법, 교통시설특별회계법,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이에 기재부에 권한이 집중돼 있어 이같이 폐해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세수결손이 발생하면 국고로 돌려막기를 해서 메울 수 있으니까 추경도 거부하고 다 알아서 하는 것 아니냐”며 “예산, 세제 등 모든 기능이 한 부처에 집중되다 보니 세수 추계에 과정에서 사고가 있든 간에 알아서 대응하고 국회는 패싱하는 것 아니냐. (기재부를) 쪼갤 때가 됐다”고 했다.
이에 최상목 기재부 장관은 “정부의 조직 설계는 행정부 내부에서 조정을 잘하느냐의 이슈”라며 “(기재부의) 권한이 막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책임감이 더 무겁다”고 했다.
지난 ‘12·3 비상계엄’ 당시 최상목 장관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건네받은 ‘국가 비상 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에 관한 쪽지 사태도 기재부 분리론에 힘을 실은 것으로 파악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비상계엄 과정에서 ‘계엄쪽지’ 등을 비롯해 기관 간 권한 분배 ‘견제와 균형’이 잘 작동해야 한다는 논리가 당내에서 힘을 받고 있다”며 “한쪽에 쏠린 막강한 권한은 이번이 해소할 기회”라고 했다.
◇“예산처, 중·장기관점 전 부처 총괄해야”
기재부 분리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 때까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로 나뉘어 있던 지금의 기재부는 김영삼 정부 때는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됐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쪼개져 10년간 지속됐다.
이후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기재부로 통합되고 금융정책 기능만 금융위원회로 이관됐다. 특히 2013년 3월에는 기재부가 부총리급이 되면서 김영삼 정부의 재정경제원에서 금융 기능만 빠진 ‘경제 컨트롤 타워’가 완성됐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기재부의 역할도 달랐다”며 “이제는 경제와 예산 기능을 따로 떼어내 재정경제부는 성장률·물가상승률·국제수지·실업률 등 4가지 정책 목표에 충실하고, 기획예산처는 중·장기적 관점으로 환경·국방·교육 등 전 부처를 총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