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 물살 가르며 춤사위…"흐르는 물처럼 희망 담았죠"

장병호 기자I 2021.04.20 06:00:00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감괘'' 리뷰]
대극장 바닥에 수조 설치, 물로 가득 채워
역동적 군무 압권…물방울 춤으로 승화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명의 남녀가 드넓은 무대 바닥에 잔잔하게 깔린 물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꿈 속의 남자, 그리고 꿈 속의 여자가 서로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으며 펼치는 몸짓은 애절함으로 가득했다. 결국 남자 홀로 남자 무대 위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내렸다. 여느 무용 공연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었다.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감괘’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지난 16일과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인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감괘’는 기획력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만물의 기원인 물의 의미와 정신을 소재로 세상의 진리를 춤으로 풀어낸 이번 공연은 2톤에 달하는 물을 공연의 중요한 도구로 이용해 관객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했다.

서울시무용단은 이번 공연을 위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바닥에 가로 18m, 세로 12m 크기의 수조를 설치하고 이곳을 물로 가득 채웠다. 수조의 높이는 10㎝ 가량으로 객석에서 바라볼 때 깊이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잔잔해 보이는 물은 무용수가 움직일 때마다 함께 물결을 일으키며 관객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목인 ‘감괘’는 역학에서 자연계와 인간계의 본질을 설명하는 기호인 팔괘(八卦) 중 하나로 물과 험난한 운명을 뜻한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8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태초의 탄생부터 물이 만들어내는 만물의 풍경, 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 물을 통해 바라보는 내면, 그리고 거센 비바람과 맞서는 운명 등 인간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풀어냈다.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감괘’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처음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들은 물장난을 치듯 물 위에서 유쾌하면서도 자유롭게 몸짓을 펼쳐보였다. 때로는 각 잡힌 군무로 비장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바닥에 설치된 조명으로 물에 비친 내면의 모습을 표현하는 등 다채로운 춤사위로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겼다.

무대 위에서 물이 쏟아진 뒤 펼쳐진 6장 ‘중수감’(重水坎)은 이번 공연의 백미였다. 비바람으로 가득한 험난한 세상 속에서 운명과 맞서 지칠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군무로 표현한 장면이었다. 무용수들의 격한 움직임은 무대 위로 높이 튀어오르는 물방울마저 춤으로 승화시켰고, 객석에선 박수가 절로 터져나왔다. 바닥을 가득 채운 촛불과 함께 희망을 전한 엔딩도 긴 여운을 안겼다.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감괘’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한 무용극을 주로 선보여온 서울시무용단은 2019년 정혜진 단장 취임 이후 ‘놋’을 통해 컨템포러리한 대형 창작무용 공연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감괘’ 또한 그 연장선에서 서울시무용단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은 정혜진 단장이 총괄안무와 예술감독을 맡고 아크람칸무용단 출신 김성훈, 서울시무용단 지도단원 전진희, 한수문이 지도단원으로 참여했다. ‘놋’에 이어 연출가 오경택, 작곡가 김철환, 조명디자이너 신호 등이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정혜진 단장은 “‘감괘’는 코로나로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만들었다”며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쉼 없이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면 험난함을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자 했다”고 이번 공연의 의미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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