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돌아온 피케티 "불평등은 정치적인 것"

장병호 기자I 2020.06.10 05:06:30

자본과 이데올로기
토마 피케티|1300쪽|문학동네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프랑스의 스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49·파리경제대 교수)가 6년 만에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로 돌아왔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통해 자본주의의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실재하고 있고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라는 분석을 폭넓은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는 불평등의 근원을 정치·사회·경제적 역사 자료와 통계 데이터를 통해 추적한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저자 토마 피케티(사진=AFPJ, OESL SAGET).


지난해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이번 저서에서 피케티는 “불평등은 경제적인 것도 기술공학적인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꺼낸다. ‘21세기 자본’이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의 경제적 동역학을 분석했다면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21세기 자본’이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불평등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동역학을 분석하는데 집중한다. 불평등이 경제 논리에 의한 필연이 아니라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세력균형에 따라 형태를 바꿔가며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13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와 2부는 근대 이전과 제국주의 등장 이후 유럽의 역사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그 정당화의 기원을 다룬다. 특히 피케티는 2부에서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배 종언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이 노예들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노예소유자인 유럽인들에 대한 배상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정치체제와 소유체제가 불가분의 관계로 부단히 연결돼온 역사적 과정이 있었기에 ‘사적소유’가 불가침의 신성한 권리로 완성됐다는 것이다.

3부와 4부는 금융자본의 세계화와 초집중, 조세피난처로 상징되는 불투명성으로 한 국가 안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재분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부의 불평등이 세대를 건너 대물림하며 더욱 집중하는 현상, 유럽 사민주의 정치가 재분배를 향한 야망을 포기한 대가, 옛 공산국가 지배자들의 과두지배와 재정 불투명성, 엘리트 중심의 교육 불평등으로 심화하는 소득 불평등 등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불평등의 양상은 20세기 중반 상대적 평등을 실현했던 계급정치의 실종으로 귀결된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대안은 무엇일까. 피케티는 먼저 ‘사회적 일시소유’를 제안한다. 개별적인 부의 대물림을 막고 사회적 상속을 실현하기 위해 재산세나 토지세 같은 사적소유에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누진소유세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피케티는 이렇게 걷어 들인 재원을 청년을 위한 자본재원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경우 성인 평균자산의 60%에 해당하는 12만 유로(약 1억 6000만원)를 25세가 되는 청년에게 지급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연방주의의 도입 필요성도 강조한다. 불평등을 옹호하는 극우파에 맞서 국경·이민·민족·종교를 둘러싼 균열과 이로 인한 비극을 평등주의적 연대로 묶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자본’이 제안했던 ‘글로벌 자본세’ 만큼이나 급진적인 대안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지금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사회의 불평등을 뿌리 깊이 정당화하고 고착시키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21세기 자본’이 촉발시킨 불평등에 대한 논쟁은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발간과 함께 다시 한 번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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