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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투자레슨]성장株, 대세인가 버블인가

송길호 기자I 2023.08.10 06:15:00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주식투자는 결과가 중요한 게임이다. 가치투자건, 모멘텀투자건, 아니면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궁극적으로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주로 불리는 삼성전자를 사서 손해보는 것보다 생소한 코스닥 종목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쪽이 더 나은 투자이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나름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 주식투자는 며칠 바짝 뛰고 메달의 색깔이 결정되는 올림픽 경기라기보다는, 거의 매일 경기가 이어지는 프로야구의 페넌트 레이스와 같은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지만 장기적인 승률을 높여야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게임의 규칙은 야구와 투자가 비슷하다.

한두 경기의 승부는 운의 영역에 속할 수도 있지만, 한 시즌에 6할 정도의 승률을 유지하면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확고한 원칙이 필요하다. 원칙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실력이다. 원칙은 종목을 고르는 기준이 될 수도 있고, 투자하는 자금의 성격이 될 수도 있고, 리스크 관리와 관련된 일관성이 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선택한 행위에 내재돼 있는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023년 한국 증시는 2차전지 관련주들로 뜨거웠다. 특정 산업이나 기업의 실적이 한없이 부풀어 오를 수 있다는 기대는 투자자들을 매혹시킨다. 치솟는 주가는 여기에 편승하지 못하면 기회가 없다는 조바심을 가진 투자자들을 불러 모은다. 주가는 매수를 망설이던 소심한 투자자들이 뒤늦게 참여할 때까지 자기강화적으로 상승한다. 올해 경험했던 2차전지 관련주들의 강세가 극히 이례적인 것 같지만, 이런 주가 흐름은 낯설지 않다. 열광의 시기가 지나고 난 후에 새겨지곤 했던 깊은 상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투자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성장산업은 늘 외피를 바꿔 쓰면서 주식시장에 등장했다. 올해의 기대주는 2차전지였지만, 2020년에는 바이오였고, 2013~14년에는 화장품이었다. 2010~11년에는 차·화·정(자동차·정유·화학)이 있었고, 1990년대 말에는 닷컴주, 1980년대 말에는 증권주, 1970년대 말에는 건설주가 당대의 성장주였다.

모든 자산가격에는 사이클이 있어 강세장이 지나면 약세장이 도래하지만, 성장주 투자가 남긴 상흔은 유독 깊었다. 성장주에 대한 열광은 ‘버블’을 거의 필연적으로 불러왔기 때문이다. 버블은 때로는 과잉낙관의 산물로, 때로는 신산업 육성에 수반되는 필요악으로 등장했다.

성장주에 대한 열광은 이들 종목군에 대한 높은 밸류에이션 부여로 나타난다. 괜찮은 자산을, ‘좋은 가격’에 사야 투자의 승률을 높일 수 있다. 아무리 높은 가격을 지불해도 그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투자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바보가 있다면 운 좋게 팔고 나올 수 있겠지만, 비싸게 사는 행위 자체는 투자에 수반되는 리스크를 높인다. 성장산업의 스토리는 매력적이지만, 주가가 그 기대감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집단적 쏠림은 인기있는 주식의 주가를 버블권까지 올려놓을 가능성을 높인다. 초기 투자자가 아니라면 성장에 대한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주주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성장주 투자에 내재된 가장 큰 리스크이다.

한편으론 신성장산업의 육성 과정에서 버블이 필요악으로 요구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이해가 필요하다. 1990년대 후반의 닷컴 버블이 무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고평가된 기술주들을 사들였던 투자자들은 ‘손편지를 대신해 이메일을 보내고, 쇼핑과 음악감상도 인터넷에서 하는 세상’을 꿈꿨을 것이다. 이 판단은 옳았다. 요즘 우리가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당시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던 기업들이 지금 만개한 인터넷 세상의 주역으로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주역이 되기는커녕 상당수 기업들은 파산해서 퇴출됐다. 인터넷 생태계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야후와 엠파스, 라이코스는 쇠하거나 사라졌고, 닷컴 버블 국면에서 상장돼 있지도 않았던 구글이 절대 강자가 됐다.

인간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 흥하고 망할 기업을 정확히 구별해 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역사 속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신산업에 속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결국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산업 전반으로 일단 돈이 흘러 들어가야 되는데 기술낙관론에 기댄 버블이 형성되지 않으면 신산업에 자금이 들어가기 어렵다. 닷컴과 바이오가 그랬고, 2차전지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인터넷 생태계는 구글이, 한국은 네이버가 평정했지만, 처음부터 꼭 찝어 구글과 네이버가 아니었고, 많은 벤처기업들에 자금이 투입된 가운데 이들이 예외적으로 살아남았다고 봐야 한다. 닷컴버블이라는 열광이 없었더라면 구글과 네이버 등이 애초에 자금을 수혈받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신산업 육성에는 버블이 필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과도한 거품이 형성된 종목을 보유하고 있었던 주주들은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 나타났던 Nifty-Fifty 열풍도 곱씹어볼 점이 있다. Nifty Fifty는 당시 미국 기관투자가들을 열광시켰던 우량주 50여개 종목을 지칭한다. IBM·맥도널드·제록스 등이 여기 속하는데, 이들은 당시 ‘One-decision stock’으로 불렸다.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사면, 팔 필요 없이 평생 보유할 가치가 있는 주식이라는 평가였다. Nifty Fifty 종목들은 닷컴 버블 국면의 종목들과는 달리 현재까지 살아있는 미국의 우량 기업들이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해당 종목들이 너무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는 사실이다. 이들 종목은 PER(주가수익비율) 40~50배에 거래됐다. 훌륭한 기업들이지만, 주가는 기대를 너무 많이 반영한 수준이었다. 1974년 Nifty Fifty 버블이 붕괴된 이후 이들 우량주들이 1973년의 고점을 회복하기까지는 십수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자산이든 비싼 밸류에이션을 주고 사는 행위는 늘 경계해야 한다. 성장에 대한 솔깃한 스토리에 탐닉하기보다는 과도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특정 섹터에 대한 대중들의 쏠림이 있다면 반대편에 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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