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젊은 모색 2021''
마음은 풍요로웠던 1980~90년대 향수 느껴져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동시대 예술의 최전선에 있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감성·고민을 가장 빠르고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나아가 미래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가늠해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 ‘젊은 모색’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달 28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문을 연 ‘젊은 모색 2021’에서는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한층 깊어진 젊은 작가 15명의 시대적, 예술적 탐구를 엿볼 수 있다. 올해 참여 작가는 강호연·김산·김정헌·남진우·노기훈·백아람·배헤윰·신정균·요한한·우정수·윤지영·이윤희·최윤·현우민·현정윤 등이다.
| 강호연 ‘리-레코드 바이올렛’(2021), 혼합매체 설치, 375x615x360cm(사진=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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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모색 2021’은 상당수 작품에서 1980~90년대 향수가 묻어났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강호연 작가는 1980~90년대 사용했던 전축과 카세트 등 음향장비부터 철 지난 레코드 판까지 당시 음향기기들을 근사한 서울의 야경으로 재탄생시켰다. 보랏빛이 도는 서울의 야경에는 불 꺼진 레코드 가게가 있고, 가게들 사이에선 시티팝이 흘러나온다. 관람객들에게 과거 화려했던 도시의 이미지를 시각·청각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서울의 호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최윤 작가는 30분 가량의 영상 두 편에서 꽃무늬 옷 등 흔히 촌스럽고 유행이 지났다고 생각하는 ‘오래된 것들’에 주목했다. 노기훈 작가는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됐던 구미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사진에 담았다. 사진에는 섬유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여성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가 담겨있다.
이들 작품은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번지는 ‘뉴트로’ 열풍과 맞닿아 있다. 예전 감성은 유지하되 신선하고 새로운 감성을 담은 ‘뉴트로’는 단순히 호기심, 재미를 넘어 과거를 동경하는 젊은 세대의 마음을 담고 있다. 1990년대에는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생활 수준은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지만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호황을 누렸다. 반면 전반적으로 둔화된 성장에 갑작스레 덥친 코로나19 팬데믹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웠다. 김윤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현실에서 오는 좌절감이 마음만큼은 풍요로웠던 과거를 동경하게 하는 요소”라고 이번 전시의 의미를 설명했다.
팬데믹 이후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담겨있다. 김정헌 작가는 설치와 회화 작품으로 도시와 자연환경의 문제, 자본주의 시스템의 불균형적 구도를 풍자한다. 인간과 가축, 포유류, 곤충 등 자연속 생명체들이 한데 합쳐진 조각 작품을 통해 공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윤지영 작가는 팬데믹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극도로 자의식이 과잉돼 가는 현대인의 상황을, 동그란 구 형태의 조각을 다양한 병식으로 변형시킨 ‘옐로 블루스’ 시리즈를 통해 보여준다. 요한한 작가는 디지털 시대의 신체 감각과 소통 방식의 변화를 관객 참여형 미디어, 퍼포먼스 작품으로 선보인다. 관람객은 오픈 채팅방에서 각자의 소통과 감각, 신체 언어를 나눌 수 있다.
‘젊은 모색’은 올해 40주년을 맞이해 중앙홀에 기념 아카이브 전시도 준비했다.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시작해 올해까지 20회차에 걸쳐 약 400명의 신진 작가들을 소개했다. 1989년 이불·최정화, 1990년 서도호, 2000년 문경원 등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한 작가들도 다수 소개했다. 아카이브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지금까지 ‘젊은 모색’ 전시의 변천과 언론·매체에서 어떻게 지금껏 전시들이 다뤄졌는지 옛 자료들을 볼 수 있다. 전유신 학예연구사는 “한국 미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자리에서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노기훈 ‘공단 삼거리’(2012), 피그먼트 프린트, 100x125xcm(사진=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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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 ‘마음이 가는 길’(2021), 단채널 영상, 사운드, 30분 30초(사진=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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