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발렌타인데이의 주인이 바뀌었다. 커플? 아니다. 바로 금쪽같은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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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평균 실종 현상도 한몫했다. 어중간한 가격의 선물은 외면받지만, 아주 싸거나 아주 비싼 것만 살아남는다. 기왕 돈 쓸 거면 확실하게 나를 대접하겠다는 가심비 추구가 10만원짜리 초콜릿 박스를 완판시키는 동력이다.
과거의 발렌타인데이가 남의 기분을 맞추는 날이었다면, 지금은 철저히 내 혀를 호강시키는 날이다. 편의점 매대에 쌓인 1+1 초콜릿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신 프랑스에서 비행기 타고 왔다는, 이름도 읽기 힘든 브랜드의 초콜릿을 고른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에게 주는 선물은 이거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지만, 나에게 주는 선물은 타율 100%의 홈런이기 때문이다. 내가 민트초코를 좋아하면 눈치 안 보고 치약 맛 나는 걸로만 꽉 채우면 그만이다. 이 완벽한 취향의 독재야말로 혼자 사는 즐거움 아니겠는가.
이 소비의 기저에는 보상 심리라는 강력한 명분이 있다. 생각해보라. 1월 내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사회적 미소를 짓느라 얼마나 힘들었나. 설 연휴에 잔소리 폭격을 견뎌내야 하는 나에게 이 정도 사치는 부려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는 묻는다. 그 돈이면 뜨끈한 순대국이 몇 그릇이냐고. 하수다. 순대국은 배를 채우지만, 10만원짜리 위스키 초콜릿은 자존감을 채운다. 비록 내 통장은 텅 빈 텅장이 될지언정, 최고급 디저트를 음미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구역의 VIP다. 옆구리는 시려도 입안은 달콤해야 버틸 수 있는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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