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역사적으로 커다란 위기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국가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돼 왔다. 물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긴급 민생 대책은 가장 먼저 실행해야 한다. 자금난과 임금 체불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자영업자와 근로자 등을 위해 긴급 자금을 지원하고 실업급여와 일자리 프로그램을 늘려 고용 붕괴를 막아야 한다.
둘째,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 반복되는 탄핵 갈등으로 표출되는 대통령과 국회 간의 충돌은 권력 집중과 불투명한 리더십, 후진적 정당정치, 비민주적 선거제도 등 현재의 정치 시스템이 기능부전 상태에 처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정파적 이익이 아니라 다원화한 한국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제도와 사람을 바꿔야 한다. 비상시국에도 국익보다 당리당략을 앞세운다면 국민은 정치 자체를 탄핵할 것이다.
셋째, 산업과 고용 구조도 재편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 혁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중국에도 뒤처진 산업구조 재편을 추진하고 노동자들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폴리텍을 중심으로 재교육 프로그램과 평생 학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활동과 인력 채용을 가로막는 통상임금, 최저임금, 근로시간 등 낡은 노동규범과 처벌만능주의에 빠진 노동형법을 혁신하지 않으면 청년 취업난 해소는 요원하다. 일자리가 있어야 노동조합도 존재할 수 있다.
넷째, 사회적 연대와 통합의 리더십 없이는 어떠한 대책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여야는 정쟁을 멈추고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민생 안정을 위한 대타협에 나서고 노사도 힘을 보태야 한다. 나라 안팎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가시적 조치로는 가칭 ‘반도체특별법’을 여·야·정 합의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지금의 한국 상황은 전형적인 ‘인터레그넘’(interregnum), 즉 옛 질서는 붕괴했으나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지 않은 공백기의 모습이다. 이는 단지 정치의 영역만이 아니라 소수가 지대(rent)를 독식하는 경제, 양극화한 노동, 혁신이 가로막힌 사회 등 국가 시스템 전 분야에 걸쳐 있다.
창조적 파괴와 혁신으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하며 그 과업은 몇 가지 원칙 위에서 실행해야 한다.
첫째,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이다. 모든 결정은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책임 있는 정치와 행정이 혼란 속에서도 국민에게 안정감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유연성과 신속성의 원칙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한 정책 대응과 유연한 전략이 필수적이다. 단기적 혼란 대응과 장기적 혁신 과제를 병행하며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국민 중심의 변화다. 주권자인 국민이 변화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공론화와 정책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 변화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해야 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한국 사회에 위기와 도전을 안겼지만 동시에 낡은 체제를 혁신하고 새로운 질서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인터레그넘을 혼란과 공백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더 강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지속 가능한 경제, 통합된 사회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