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만난 한 바이오벤처 대표의 하소연이다. 이 회사는 한때 유망하고 차별화된 신약개발 플랫폼을 내세워 상당한 투자금을 끌어모으며 업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바이오 벤처였다. 신약 파이프라인을 대폭 확대하고, 연구인력도 의욕적으로 늘리면서 공격적인 사업전략을 펴온 기업이었기에 이날 이 대표의 발언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바이오투자 가뭄이 올해도 지속되면서 K바이오는 이 업체처럼 그야말로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내몰리며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면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투자가 끊기고 곳간이 거덜나면서 신약 연구개발을 중단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가거나 매물로 회사를 내놓는 바이오벤처가 지금도 속출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올해 바이오기업간 인수·합병(M&A)이 빈발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신약 상용화에 이르지 못하고, 기술수출마저 결실이 없는 대부분 바이오벤처는 사실상 매출이 수년째 전무한 상황이어서 투자 갈수기는 치명적인 후폭풍으로 몰아닥쳤다. 주식 시장에 상장, 샴페인을 터뜨렸던 바이오벤처 상당수는 이제 누적된 적자등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바이오벤처의 본업인 신약개발이 매출로 이어지려면 최소 십수년에 걸쳐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해야 하는 업의 특성상 회사자금의 고갈은 곧바로 회사의 존폐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시장성이 막대한 신약기술을 외국기업에 통째로 헐값으로 넘기는 바이오벤처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나마 미리 정상적인 조건으로 신약 기술수출에 성공하거나 연관 사업분야인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한 바이오벤처들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신약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어 희망을 준다.
투자시황이 악화된 것이 지금 바이오벤처 업계가 겪고 있는 혹독한 시련의 핵심 원인이지만 일정 부분은 업체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얼마 전까지 몰려드는 투자자금으로 본업은 소홀히하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등 흥청망청 돈놀이에 열중하는 바이오벤처들이 넘쳐났다. 과도한 의욕을 앞세우며 신약 파이프라인을 지나치게 확장하는가 하면, 조직 규모를 확대하느라 정작 핵심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등한시했다. 투자 풍년 뒤에 흉년이 오리라는 것을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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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가뭄이라지만 잠재력을 입증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바이오벤처들은 성공적으로 투자유치를 이뤄내고 있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투자 가뭄을 남의 얘기로 만든 바이오벤처들의 공통점은 잘할수 있는 신약개발 분야에만 회사의 역량을 집중해 왔다는 점이다. 남들이 풍부한 투자유치 자금을 바탕으로 과도한 외형확장 등에 한눈을 팔고 있을때 이들 바이오 벤처는 초심을 잊지않고 본업에 전념한게 어려울 때 빛을 보게 된 배경이다.
돌이켜보면 수년전까지 바이오 섹터에 물밀듯 몰려들었던 투자자금은 K바이오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바이오 거품을 키운 장본인 역할을 했다. 그러다보니 과거 IT버블 때처럼 바이오라는 단어만 회사이름에 붙어 있으면 변변찮은 신약 파이프라인만으로도 투자를 어렵지 않게 받아낼수 있었다.
지금의 바이오 투자 빙하기는 결과적으로 신약 경쟁력이 부족한 바이오벤처들을 털어내고, 차별화된 잠재력있는 신약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업체들을 선별하는 작용을 하고있다. 요컨대 지금 K바이오는 한단계 도약을 위해 ‘옥석가리기’라는 ‘성장통’을 호되게 앓고 있는 셈이다. 이왕 거쳐야하는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라면 되도록 그 기간이 짧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서도 옥석가리기는 이 기회에 확실하게 진행됐으면 한다. 그래야만 불신의 눈초리를 받고있는 바이오업계에 대한 세간의 신뢰를 높이고, 한국경제의 미래를 짊어질 핵심 산업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올해는 K바이오에게 유난히 고난으로 점철된 한해 였지만, 새해는 고진감래(苦盡甘來), 풍성한 결실을 맺는 수확의 황금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부디 지금 K바이오가 겪고 있는 성장통이 글로벌 제약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름진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