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접경지역을 가다]①관광객들로 붐벼… 물밑 변화 시작되는 단둥

김인경 기자I 2018.07.19 06:00:00

中 단둥~北신의주 당일치기 관광에 하루 1000여 명 유커 ''들썩''
북중 혈맹관계 복원 후 국가여유국 주도 관광상품 봇물
유엔 안보리 제재는 여전…물동량 변화는 크지 않아 ''답답''
"김정은 신도 방문 이후 단둥 기대감 확대…서서히 변화 생길 것"

△17일 오전 10시께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출발해 북한 평양으로 도착하는 국제 열차가 압록강철교(조중우의교)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 열차는 북한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유커)의 증가로 8월까지 매진 행렬인 것으로 알려졌다.[사진=김인경 베이징 특파원]
[중국 단둥= 이데일리 김인경 특파원] “200위안(3만 4000원)이면 북한에 바로 갈 수 있는데.”

북·중 접경지대인 랴오닝성 단둥의 압록강단교에 오르기 위해 매표소 앞에 줄을 서 있는데 중국인 아주머니가 호객을 한다. 말인 즉슨, 중국인이라면 신분증 하나로 여권도 없이 당일치기 신의주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자가 한국인인 것을 확인한 아주머니는 압록강 앞에서 사진을 찍는 중국인 가족에게 다가갔다.

셀카봉을 들고 삼삼오오 사진을 찍는 중국 관광객 사이로 압록강 단교에 오르자 바로 옆으로 조중우의교(압록강철교)가 보였다. 그리고 신의주에 당일치기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탄 버스들과 화물 트럭들이 조중우의교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어 단둥역에서 출발해 평양으로 향하는 8량 짜리(조종칸·화물칸 제외 6량) 국제열차가 조중우의교를 통과했다. 이 기차에 탄 사람들은 보통 평양을 3박 4일간 방문하는 여행객이다. 무역업에 종사하는 중국인 A씨는 “단둥~평양 열차는 성수기인 8월까지 거의 매진됐다”며 “기차를 타며 북한을 둘러볼 수 있다 보니 여행 겸 사업 구상으로 신청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종종 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북·중 교류…8월까지 매진 행렬

17일 오전 9시 단둥 세관에는 신의주로 가려는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이곳에서 간단한 검문을 마친 후 바로 뒤 주차된 버스를 타면 오전에 출발해 저녁 무렵 단둥에 돌아올 수 있다. ‘묘향산 려행사’라 쓰여있는 버스도 눈에 띄었다. 따로 여권도 필요 없고 세관만 통과하면 북한을 방문할 수 있어 최근 하루에 1000~1500여명이 신의주를 찾는다.

평양까지 가는 상품도 인기다. 오전 10시에 단둥에서 평양으로 하루 한 번 운행하는 국제열차 타고 방문하는 3박4일 여행 코스는 2500~3500위안(42만 5000~59만 5000원) 수준이다. 예전엔 이 기차는 공무원이나 일부 사업가만 탔지만 요즘은 표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올해 들어 3월과 5월, 6월에 이르기까지 북·중 정상이 세 차례 만난 후 북·중 관계가 ‘혈맹’ 수준으로 복원됐고 여행상품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단둥역 주변에서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중국인 B씨는 “중국 국가여유국(관광청)이 북한 여행상품을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 사람들이 북·중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북한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월 북한 황해북도(황해도)에서 중국인 32명과 북한 근로자 4명이 사망한 대형 교통사고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이 북한으로 가는 여행상품을 선뜻 선택하는 것은 북한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심리가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인근 식당의 모습도 바뀌었다. 굳이 류경식당이나 고려식당 같이 북한 전문 식당이 아니더라도, 중국식당에서도 한복을 입은 종업원을 찾아보기 쉽다. 인근 호텔에서 근무하는 조선족 C씨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반응이 좋으니 음식점 주인들이 북한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다”며 “가격도 중국 노동자의 절반이나 3분의 1 수준이니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 해제 기대로 중국 랴오닝성 단둥 신구 집값이 1.5배 가량 급등하자 중국 단둥시가 규제에 나섰다. 사진은 단둥 신구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전경. [사진=김인경 베이징 특파원]
◇제재는 여전하지만…뿌리내리는 기대감

아직 변화를 장담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여전히 5·24 조치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태로 촉발된 5·24 조치 이후 남북관계는 급격히 경색됐고 남북 교역 역시 중단됐다. 4000~5000명에 이르던 단둥 내 우리 교민은 현재 7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북·중 관계 역시 여전히 제재에 묶여 있다. 지난달 12일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완전하게 검증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꺾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산 석탄이나 철, 섬유 등 주요 제품들의 거래는 전면 중단돼 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 신규 노동 허가 발급도 중단된 상태다. 실제로 조중우의교를 오가는 화물 트럭들은 하루 평균 70여대 수준으로 매일 300여 대가 오가던 안보리 제재 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줄어든 모습이었다. 북한에 공장을 두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라는 중국인 사업가 D씨는 “해산물 같은 소규모 밀무역은 최근 들어 알음알음 들여온다고도 하지만 석탄이나 철광석 같은 건 어림없다”며 “밀수를 해서 컨테이너 하나 들여오는 비용도 20배가 뛰고, 어떻게 들여왔다 해도 당국에 걸리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데 지켜야지 도리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름 아닌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에서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0일 김 위원장이 북·중 접경지역인 평안북도 신도군을 찾아 현지 지도를 했다고 보도했다. 단둥과 마주 보고 있는 신도군엔 북한과 중국이 합작으로 추진했던 황금평 경제특구가 있다. 또 그는 신의주로 자리를 옮겨 제지공장과 화장품공장을 살펴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과 한국,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연 후 처음으로 찾은 곳이 개성이나 나진·선봉 지구가 아닌 압록강을 끼고 단둥을 마주 보는 지역이란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단둥 시내에서 약 20km 떨어진 단둥 신구 신압록강대교 인근 고층아파트의 가격이 올해 들어 1㎡당 3000위안(51만원)대에서 5000위안(85만원)대로 급등한 것 역시 이 같은 이유에서다. 2014년 완공된 후 아직 개통도 되지 않은 신압록강대교지만, 북한의 개방만 시작되면 물류가 이 지역으로 몰리게 되고 단둥 세관 역시 이 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물론 아직 북한의 개방이 시작되지도 않은데다 이 아파트들은 차익을 노린 외지인들이 사들인 터라 대부분이 빈집이다.

단둥에서 14년을 보낸 교민 E씨는 “북한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비핵화와 개방이 진행되면 단둥도, 북·중 접경지역도 달라질 것이란 기대감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북중 접경지역 중국 랴오닝성 단둥 신구에 위치한 신압록강 대교의 모습. 지난 2014년 기대를 모으며 완공됐지만 4년째 여전히 개통되지 않은 상태이다.[사진=김인경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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