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들 사이에 첨예한 견해 대립이 있을 때 과거 헌재는 어떻게 결론에 도달했을까. 헌법재판소가 발간한 구술총서에 담긴 전직 재판관들의 회고를 통해 ‘평의실 안’에서 벌어지는 의견 충돌과 해결 과정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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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1기와 2기 재판부는 의견 충돌 양상에서 다소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2기 재판부에 속했던 정경식 전 재판관은 1기 재판부에 대해 “문 열고 뛰쳐 나가기도 하고 그랬다고 하더군요”라고 회고했다. 면담자가 “재판관님들이 구성이 다양해서 정치인들도 계시고 그러다 보니까 평의를 하실 때 굉장히 격론을 벌이면서 어떨 때는 고성이 오가기도 하고 그랬다고요?”라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2기 재판부는 상대적으로 차분했다고 한다. 정 전 재판관은 “우리는 그렇게 뛰쳐나가는 사람은 없었어요. 자기 주장을 하고 그리고 결정문을 썼죠. 우리는 뭐 삿대질을 하고 그런 것은 없었어요”라고 설명했다.
◇“재떨이 날아가요”…격렬했던 의견 대립 사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시윤 전 재판관은 사법서사법시행령 사건에서 재판관들 의견이 4대4로 나뉘어 소장의 캐스팅보트가 필요했으나 소장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한병채 전 재판관이 강수를 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 전 재판관은 “한병채 재판관이, 그분이 국회의원 4선 의원이고 법사위위원장을 한 분이에요. 그 당시에 담배를 거부감 없이 피우던 시절이니까, 재떨이를 딱 들어 갖고 ‘우촌!’ 소장의 호가 우촌입니다. ‘만일에 여기서 결단을 못 내리면 재떨이가 날아가요’”라며 윽박질렀다고 전했다. 그 결과 소장이 결단을 내려 사법서사법시행령에 대한 위헌 선언이 이뤄졌다고 한다.
◇6시간 넘는 논쟁…평의 연기하거나 다른 안건 먼저
헌재의 평의는 때론 마라톤 회의로 이어졌다. 김용준 전 헌재소장은 “너무 많이 토론해서 자체적 결론을 수합하기가 어려울 정도”라며 “1995년 3월 9일에는 6시간 30분을 토론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앞으로는 평의를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만 할 게 아니라 수시로 열 방침”이라고도 말했다.
의견 일치가 어려울 경우엔 평의 자체를 연기하기도 했다. 정경식 전 재판관은 “연기를 해요. 평의 연기를, 아니 그 부분을 제쳐놓죠. 다른 것을 먼저 하죠. 그날 들어간 안건은 심의해야 하니까”라고 설명했다.
추가 연구가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정 전 재판관은 “어떤 사건은 연구가 덜 된 것 같으면 대놓고 연구를 더 시키자, 그리고 뭐 어떻게 하자, 또 외국 판례가 필요하면 미국어학권하고 독일어학권 연구관들도 있고 하니까 (추가 연구를 요청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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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토론 과정에서 재판관들이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을까. 정경식 전 재판관은 “바꾸는 경우가 있지만 의견을 바꾸는 것이 완전히 바꾸는 경우는 많지 않고, 있긴 있어요. 위헌이냐, 불합치냐. 그런 거는 조금 바꿀 수 있고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견 변경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조금 있어요”라고 인정하면서도 “기본적인 이념의 문제는 바뀌지 않죠. 부수적인 것은 바뀔 때도 더러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소장의 조율 역할이 중요”
평의 과정에서 소장의 조율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김양균 전 재판관은 조규광 초대 헌법재판소장에 대해 “본인 개인 의견을 많이 안 내려고 하셨어요”라며 “될 수 있으면 여섯 명이 모아지도록 유도를 하시고 자기가 자기 개인 의견 막 고집하면 뿔뿔이 분산돼 버리잖아요. 될 수 있으면 그렇게 안 되게 하시더라고”라고 평가했다.
김 전 재판관은 “조 소장은 본인 주장을 막 고집해서 하시는 것이 아니고 남이 주장하도록 기회를 주고 본인은 될 수 있으면 그걸 조정해서 하려고 했다”고 돌아봤다.
◇“토론은 토론, 인간관계는 구별”
의견 대립이 있더라도 인간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황도연 전 재판관은 “제 기억으로는 어디까지나 토론은 토론이고 인간관계와는 구별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의견을 낸 사람도 같이 이야기하고 술도 같이 먹기도 하고 그랬죠. 그건 어디까지나 의견 차이일 뿐이죠. 거기에는 초연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황 전 재판관은 “견해가 다르다고 자꾸 얼굴 붉힐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내 생각은 이렇다 하면 그대로 각자 의견 쓰면 되는 거니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2기 이후에 와서는 의견 다른 것 때문에 얼굴 붉히는 일은 거의 없고 1기 때는 조금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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