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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급똥 지옥' 이겨내며 달리는 지하철 기관사들 이야기

김현식 기자I 2024.07.10 05:00:00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이도훈|260쪽|이야기장수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거대한 고통을 겪으며 바라보는 앞 풍경에는 끊임없는 어두운 철길과 터널이 펼쳐진다. 이 지옥이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고, 내 삶에 잘못이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된다.”

에세이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를 쓴 저자는 ‘대장 관리능력’을 지하철 기관사의 중요 업무 역량으로 꼽으며 이같이 말한다. 열차 운전실에 탑승하면 약 2시간 30분을 줄곧 내달려야 하는터라 기관사들은 종종 ‘급똥’ 위기가 찾아와 삶을 되돌아보는 순간과 맞이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운전실에는 ‘최후의 수단’인 간이변기와 비닐을 씌운 쓰레기통이 존재한다. 하지만 기관사들은 뒤처리하며 느낄 자괴감이 두려워 지사제를 상비하고 다닌다. 거점 승강장에는 이른바 ‘똥대기’로 불리는 기관사를 두기도 한다.

저자는 현직 부산지하철 2호선 기관사다. 매일 지하철 출입문을 3744번씩 여닫으며 부산시를 7년간 횡단한 저자는 지하철 맨 앞 칸을 지키는 기관사들의 애환과 별별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지하 세계’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저자는 자신을 영화 ‘배트맨’ 속 주인공에 빗댄다. 잡상인, 구걸인, 취객, 고성방가 난동자, 성범죄자 등과 같은 ‘빌런’들과 사투를 벌이며 승객들에게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저자는 한 대의 열차가 굴러가기까진 역무원, 환경미화원, 구내식당 영양사 등 수많은 노동자의 피땀눈물이 필요하다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전한다. ‘일상의 히어로’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세상이 나를 내팽개쳐 버린 것 같은 날에도 지하철만큼은 나를 집 근처 역까지 어김없이 데려다줄 것이라고 여기는 승객들의 믿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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