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신광렬·조의연 부장판사에게 징계 처분을 한 것과 관련해 수도권 법원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4일 이데일리와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신 부장판사 등은 2019년 1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됐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현직 법관으로서 피고인석에 서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은 2년 10개월 만에 ‘사법농단’이라는 굴레를 벗어났지만, 이들을 기다린 건 징계였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달 24일 이들에게 각각 감봉 6개월과 견책 징계 처분한 것이다. 재판 업무 복귀가 무산된 신 부장판사는 결국 법원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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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두 부장판사를 기소하며 적시한 공소사실 요지는 2016년 5~9월 영장판사들이 10번에 걸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를 받고 법원에 접수된 ‘정운호 게이트’ 관련 영장청구서 속 법관 비리 관련 수사기록을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를 통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행위가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이 과정에서 2016년 6월 신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으로부터 전달받은 비위 의혹 부장판사 7명과 그 가족들 명단(이하 가족관계 문건)을 영장판사들에게 전달해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검찰은 범행 목적에 대해선 “법관 비리 은폐·축소를 통한 사법부의 부당한 조직 보호”라고 주장했다.
◇檢 “법관 비리 축소 목적”→ 대법 “비위 법관 빠른 징계 목적”
하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로 밝혀진 진실은 검찰 주장과는 전혀 달랐다. 신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10건의 문건 중 출처가 영장판사인 경우는 3건, 내용 중에서도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조 부장판사의 보고를 기초로 작성됐다고 인정된 문건은 2건 중 일부 내용이었다. 나머지 보고는 신 부장판사가 직접 파악했거나 법원행정처 및 신 부장판사가 검찰 수사팀을 통해 직접 얻은 정보로 추정됐다.
임 전 차장에 대한 보고의 공모도 없었고, 법리적으로도 사법행정권자인 임 전 차장에 대한 보고는 공무상 비밀누설죄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또 가족관계 문건엔 지시가 담겨있지 않았고 영장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보고 목적 역시 재판 공정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비위 혐의 법관에 대해 징계 등의 적절한 조치를 빠르게 취하기 위한 것으로 결론 났다.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판결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이유로 두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고 김 대법원장은 징계 처분했다. 징계사유는 신 부장판사의 경우 △영장기록 내 수사정보 세 차례 보고 △가족관계 문건 전달, 조 부장판사는 △두 차례 영장기록 내 수사정보 보고 △가족관계 문건 다른 영장판사에 전달이었다. ‘법관으로서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 위신을 떨어뜨렸다’는 것이 김 대법원장의 처분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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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법관 비위 파악, 가장 중요한 사법행정 역할”
형사수석부장의 법원행정처에 대한 보고 행위에 대해서도 “전달된 정보는 비위 혐의 법관의 신원과 비위 내용으로서 이는 법원행정처가 적절한 조치를 적시에 취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전달 정보 또한 이 같은 목적에 부합하는 범위 내로 한정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사법행정 담당자로선 비위 의혹 법관에 대해 형사 판결 확정 전이라도 사실관계를 파악해 신속히 징계나 사무분담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할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며 “신분보장을 받는 법관에 대한 비위 사실관계 파악은 정당한 사법행정사무의 수행이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법행정의 역할”이라고 결론 냈다.
이 같은 사법행정권자의 보고 행위는 법적 근거도 있다. 2018년 9월 폐지 전까지 대법원은 각 법원에 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를 하도록 한 재판예규 1306호를 시행했다. 재판예규가 규정한 보고 대상 사건에는 법관을 포함한 전·현직 법원공무원 형사·민사사건도 포함됐다.
이 같은 판결 취지를 고려하면 징계가 위법하다는 지적이다. 통상적인 경우 엄격한 입증을 요하는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나더라도 징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두 부장판사 사건의 경우 이와는 다르다는 분석이다. 수도권 법원 소속 한 판사는 “지금은 없어졌다고 해도 재판예규에 의해 법관 비위 정보 보고는 수십 년 간 형사수석의 중요 직무였다”며 “대법원도 무죄 판결을 통해 ‘비위 법관의 재판 업무 배제’라는 보고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한 만큼 징계는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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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부장판사 등이 불복 소송을 제기할 예정인 가운데 법관 징계 과정과 불복 절차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의 위원장(대법관 1인)과 위원 6인(법관 3인, 외부 3인)은 모두 대법원장이 임명·위촉한다. 대법원장이 입맛에 맞도록 징계위를 구성할 수 있는 만큼 법관 징계에서도 결국 대법원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법관징계법에 따라 징계를 받은 판사는 이에 불복할 경우 대법원에 징계 취소 청구를 할 수 있고, 대법원은 단심 재판을 통해 결론을 내게 된다. 하지만 2019년 1월 징계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낸 5명의 전·현직 법관에 대한 소송은 여전히 제대로 된 심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선 관련 법관들에 대한 불복 소송은 형사재판이 모두 마무리된 후 본격적인 심리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 3년 넘게 1심이 진행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차장 등에 대한 사건이 대법원 판결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사이 징계 법관들은 징계를 이유로 인사 등에서 또다시 불이익을 볼 가능성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법원이 늘 강조하는 적법절차가 정작 이번 사건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징계 불복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결국 명예회복만 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