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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하영·신중섭 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관악구 호암로에 위치한 미림여고. 오르막인 진입로를 거쳐 교문에 들어서자 창밖으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쉬는 시간 때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교무실에서 만난 김현국 미림여고 교육행정지원부장은 “일반고로 전환한 뒤 재정 부담을 덜고 학생 교육에 주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학생 충원 못하면 교사 인건비도 벅찼다”
미림여고는 지난 2011년부터 자사고로 운영됐지만 신입생 충원난을 겪은 뒤 2016년 일반고로 전환했다. 정부로부터 교사 인건비 등 학교 운영예산을 지원받지 못하는 자사고는 학생 충원난이 곧 재정위기로 직결된다. 미림여고에 따르면 자사고 운영 당시의 신입생 충원율은 대부분 70%(모집정원 350명)를 밑돌았다. 일반고로 전환하기 직전인 2015학년도 입학경쟁률은 0.4대 1에 불과했다. 학생 1인당 등록금을 600만원이나 받았지만 교사 인건비를 충당하기에도 벅찼다.
일반고는 사립학교법에 따라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재정결함보조금을 지원받는다. 이는 사립 초중고교가 학생 등록금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교직원 인건비·학교운영비의 부족분을 교육청이 지원해 주는 제도다. 미림여고는 일반고 전환 이후 교육청으로부터 교직원 인건비 등을 지원받고 있다. 박창범 미림여고 교감은 “자사고로 운영할 때는 학생충원 감소로 전체 예산이 쪼그라들어도 교사인건비는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했다”며 “재정난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부분은 학생 교육비였다”고 말했다.
미림여고는 일반고 전환 뒤 학생 충원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 서울 일반고의 학생 배치는 `선(先)지원 후(後)추첨`으로 이뤄진다. 학생 본인 희망에 따라 2단계에 걸쳐 학생을 배정한 뒤 3단계에서는 통학거리 등을 고려, 추첨으로 남은 학생을 모두 배정한다. 일반고는 이 방식에 따라 적어도 3단계에서는 입학정원을 모두 채울 수 있다. 미림여고는 자사고로 운영할 당시 교사들까지 신입생 충원 업무에 동원됐다. 교사들 중심으로 입학홍보팀을 꾸린 뒤 중학교 방문 홍보활동을 연간 5~6회 진행했다. 하지만 일반고 전환 뒤 교사들은 이러한 업무부담을 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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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고 전환 뒤 교육투자, 진학실적 향상
일반고 전환 뒤 서울시교육청 등으로부터 매년 3억 원의 운영비를 지원받는 미림여고는 입학홍보업무와 재정난에서 벗어난 후 교육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림여고 한 교사는 “학교에서 방과 후 강좌 개설이나 강사 수급, 동아리활동 지원 등에서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대학교수들을 초청, 학생들에게 전공탐색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투자는 미림여고 졸업생들의 진학실적 상향으로 이어졌다. 자사고로 운영하던 때보다 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뛴 것. 미림여고 올해 졸업생 187명 중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상위 15개교 진학자는 65명(34.8%)이다. 이는 자사고 마지막 졸업생 137명의 상위권 15개교 진학률(24%)보다 10.8%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미림여고 2학년 조성지(17)양은 “자사고가 일반고보다 진학실적이 좋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미림여고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자사고가 출범한 2010년부터 올해까지 동양고(2012년)·용문고(2013년)·미림여고(2016년)·우신고(2016년)·대성고(2019년) 등 5곳이 일반고로 전환했다. 이 가운데 미림여고를 제외한 4곳의 학교 관계자들도 일반고 전환 뒤 학교 운영 부담을 덜었다고 입을 모은다. 2012년 서울에서 처음 일반고로 전환한 동양고 관계자는 “자사고는 충원율이 미달하면 운영이 힘들어진다”며 “일찌감치 일반고로 전환한 게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 “고교무상교육 시행, 자사고 운영난 심화할 것”
최근 헌법재판소가 자사고·일반고 이중지원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자사고 존폐 여부는 교육당국의 재지정 평가로 판가름 나게 됐다. 서울에서는 자사고 22곳 중 13곳이 올해 재지정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올해 2학기 고교무상교육 시행으로 자사고 입지는 더 좁아질 전망이다. 고교무상교육은 학생 1인당 연간 158만원에 달하는 입학금·수업료 등을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으로 자사고·특목고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난 2017년 학교회계 결산 기준 광역단위 자사고의 학부모부담 경비는 720만원으로 방과 후 교육비 등을 합해도 서울소재 일반고(279만원)보다 2.6배 높다. 여기에 무상교육까지 시행되면 일반고와 자사고 간 학부모부담액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2016년 일반고로 전환한 우신고 관계자는 “고교무상교육이 전면 시행되면 그 많은 학비를 부담하면서까지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려는 학부모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서울지역 자사고 22곳의 경쟁률은 1.3대 1에 그쳤다. 특히 경문고·대광고·세화여고·숭문고 등 4곳은 일반전형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교 관계자는 “운영이 어려운 자사고 중 상당수가 일반고로 전환하고 싶어 하지만 학부모 반발이나 이로 인한 법적 다툼이 두려워 발을 못 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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