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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은 요즘 부지점장 때문에 고민이 많다. 나이는 두 살 많은데다 정년이 2년밖에 남지 않아 지점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없어서인지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매주 월요일 영업실적 회의를 하는데 제대로 참여도 하지 않고 개인별로 할당된 상품 판매 실적도 ‘0건’이다. 지점이라고 해봤자 지점장 포함해 8명밖에 없는데 영업목표를 맞추려면 전 직원이 합심해도 모자라지만, 그저 사고나 나지 않기를 바라는 처지다.
저금리에 국내 은행들의 수익성이 날로 떨어지고 있지만 은행원들은 연공서열과 호봉제에 기반을 둔 고(高)임금 체계를 고수하고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과가 낮은 직원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억대 임금(지난해 남성기준 연평균급여 1억100만원)이 지급돼 은행 수익과 관계없이 계속해서 임금 등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대외경쟁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청년 채용비율이 다른 업종에 비해 낮고 여기에 비정규직 비중까지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전문직군을 다양화하고 개인의 직무 및 성과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성과급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금융노조를 중심으로 이러한 성과급제를 반대하고 있어 임금체계 개선이 얼마나 현실화될지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은행, 연공서열 호봉제 기반
5일 서울 명동 YWCA에서 열린 한국금융연구원 주최 ‘은행의 바람직한 성과주의 확산 방안’이란 주제의 세미나에선 이 같은 논의들이 다시 점화됐다. 이 자리에서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은 연공서열 호봉제를 기반(기본급의 약 87.5%)으로 직무성과급을 일부 결합한 성과혼합형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고과에 차등해 호봉이 상승하는 경우는 2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국내은행의 임금체계는 임원, 영업점 지점장 등 관리자급, 영업점 일반직원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임원과 관리자급은 기본급에 성과급이 합쳐지는 구조인 반면, 일반직원은 사실상 호봉제에 영업점(집단)의 성과에 따라 80~120%로 상여금을 차등 지급하는 구조다. 일반직원의 임금 체계는 사실상 은행 전체 실적과는 무관하게 적용되는 셈이다.
권 교수는 “금융업은 지난해 호봉제 도입비율이 91.8%로 전체산업 60.2%에 비해 높고 연봉제 비중도 53.5%로 전체 산업대비 두 배 높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호봉제과 연봉제가 혼합해 적용되는 사실상 무늬만 ‘성과급제’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7개 시중은행 직원들의 연평균 급여는 1억100만원에 달하면서도 평균 근속년수는 18.6년(남성기준)으로 전 산업 평균(6.0년)에 비해 세 배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는 2005년 18.4%에서 지난해 4.05%로 하락했음에도 이익경비율은 2006년 46.3%에서 55.0%로 오히려 늘어났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런 패턴이 지속되면 신규 채용이 줄어들고 비정규직 고용 등이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중고령 근로자들은 정년 60세가 법제화되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기대하고 있지만 오히려 비용 문제로 조기퇴직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 산업의 2년 미만 근속연수 직원의 비중은 26.0%인데 반해 금융업의 경우 16.3%에 불과하다. 반면 비정규직 비율은 전산업 평균이 32.4%, 금융업은 42.1%로 금융업이 더 높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은행권에 전문직군 도입을 활성화하고 개인 직무 및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화하는 성과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채수일 보스턴컨설팅 대표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는 22개의 전문직군이 있고, 이 직군별로 성과평가를 모두 달리하고 있다“며 ”동양의 정서에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중국부터 이러한 서양의 조직유연성, 다양성 등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성과급제’ 두고 갈라진 은행권 노사
정작 은행권의 인식은 크게 차이가 있다. 서정호 선임연구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9월 25일부터 10월 28일까지 10개 은행의 인사 또는 경영관리부서 관리자급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0%가 현재의 임금체계가 공정한 내부경쟁을 유도하고 이에 따른 보상에 만족하고 있다. 이는 은행권의 임금체계를 직무, 성과에 따라 연동하는 성과급제로 바꾸는 데 있어 노사 협상이 관건이 될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
실제 이날 토론회는 금융노조의 피켓 시위에 둘러싸인 채 진행됐다. 김민석 금융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은행의 수익성 악화의 주범은 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수료 인하, 안심전환대출, 대우조선해양 등의 수조원대 부실 보전 등 관치금융인데 이로 인한 손실을 은행원들에게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며 “은행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는 것 자체도 관치의 사례”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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