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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빛의 변화로 공간의 부재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는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고 옥상에는 장독과 비석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공허하고 삭막한 풍경이 유리창 너머 펼쳐졌으나 정작 실내의 느낌은 따뜻하다. 오후의 햇살이 창틀의 그림자와 뒤로 환히 스며들어서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도드라진 그림의 제목은 ‘투명한 그림자’.
빛의 명암 대비는 17세기 바로크시대에 렘브란트와 카라바조 등이 즐겨 사용하던 회화의 기법이다. 명암의 세세한 대비를 통해 빛의 농담을 화폭에 재현하며 회화기교의 발전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오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이화익갤러리에서 여는 서양화가 정보영의 ‘빛, 부재의 서사’ 전은 마치 바로크시대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전시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또렷하게 들어온다. 하지만 방 전체는 아직 어둠에 싸여 있다. 어둠과 빛의 경계에 아이가 가지고 놀았을 하얀 말 인형이 놓여 있다. 자연스럽게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시간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린 아스라한 추억의 잔영들이 스쳐지나간다. 그림에 붙은 제목 ‘노스텔지아’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번 전시에서 정 작가는 ‘투명한 그림자’ 연작과 ‘노스탤지아’ 등을 포함해 20여점을 선보인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정 작가는 ‘현대회화의 공간재현과 실재의 부재’라는 박사학위논문을 썼다. 논문에서 보듯이 정 작가는 인물이나 정물보다는 공간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컸다. 공간은 결국 빛의 존재를 통해 그 실재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정 작가의 생각이다.
이후 정 작가는 2005년 청주의 한 사립미술관인 ‘스페이스 몸’의 전시공간을 소재로 선택한 후 그 공간에 들어오는 빛을 주인공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석양의 자연광을 비롯해 촛불을 켜거나 말 인형을 놓아두고 혹은 사다리나 촛불을 켜는 등 인공적인 연출을 통해 구도를 잡은 뒤 이를 사진에 담고 다시 캔버스에 옮겼다.
정 작가는 “색감은 바로크양식 회화에서 따오기도 한다”며 “빛을 다루려다 보니 실내공간을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선택한 오브제는 제주의 해녀들이 과거에 썼다는 투명한 유리구다.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은 푸른 색깔의 반투명한 유리구를 통해 한층 고요하면서도 찬란하게 일렁거린다. 정 작가는 “유리구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또 다른 부분을 포착하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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