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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박사의 쉼터]역기능 가정 대물림시키는 ‘보이지 않는 충성심’

이순용 기자I 2022.06.27 07:03:02

김미선 상담학 박사

[김미선 상담학 박사] 보통 인간은 자기 부모에 대해 두 가지 형태의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충성스러운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보이는 충성심(visible loyalty)’이고, 다른 하나는 충성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보이지 않는 충성심(invisible loyalty)’이다. 보이는 충성심은 자녀가 부모를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거나 용돈을 드리는 형태로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충성심은 이렇게 분명한 모습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에서 재현되는 부모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김미선 상담학 박사
예를 들면 매사에 정리 정돈을 요구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딸이 결혼 후 강박적으로 청소를 하며 어머니의 행동양식에 따르는 경우다. 자라면서 강압적인 어머니의 태도가 싫어 반항하고 대들었지만, 어머니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자기 집인데도 마치 바로 옆에서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는 것처럼 집 안을 정리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반복된 메시지에 반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충성심’이라 부른다.

이러한 모습은 꼭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좀 더 부정적인 충성심의 형태도 있다. 외도하시는 아버지로 인한 어머니의 절망과 슬픔을 지켜본 아들은 자라면서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신은 결코 아버지처럼 바람 피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결혼 후 자신도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흉보면서 닮는다’라는 속담처럼 어느새 외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면화(internalization)되어 바람피울 가능성이 커진 탓이다.

의식적으로는 절대 바람 피지 않겠다고 선포하고 노력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아버지의 행동을 따라 하며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을 보인다. 이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자를 존중하는 마음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를 배우고, ‘나의 어머니도 참고 살았는데 당신도 참는게 당연하지’, ‘남자란 한 번쯤은 바람피울 수 있는 거야’라는 내면의 소리를 키우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충성심으로 인해 그릇된 행동이 자녀 세대에 전수되며 역기능 가정이 대물림된다. 부모로부터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받고 자란 사람은 자녀를 학대할 가능성이 70%가 넘고, 알코올 중독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알코올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정상인보다 4배나 높다고 한다. 그렇게 경멸하고 싫어하던 부모의 행동이 은연중에 나의 마음에 자리 잡아 유사한 상황이 펼쳐지면 자신도 똑같이 따라 하게 되는 무의식의 기제다.

이러한 부정적인 ‘보이지 않는 충성심’을 수정하지 않으면 역기능적인 가정의 상호작용은 되풀이된다. 역기능의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충성심을 인식해야 한다. 주로 무의식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충성심은 스스로 인식하기 어려워 때로는 상담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자기 삶을 심도 있게 돌아보는 명상의 방법이 요구된다. 일단 보이지 않는 충성심의 부정적인 역동을 깨닫게 되면 그 횟수는 줄어든다. 원인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역동의 원인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잘못된 행동을 버리고 옳은 행동을 하고자 선택할 때 자신이 회복되고 가정도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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