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정산금 미지급 사태를 초래한 티몬·위메프의 핵심 당사자인 구영배 큐텐 그룹 대표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800억원가량 되지만 셀러 정산금으로 바로 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판매대금 1조원에 대해 “현재 회사에 자본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제 국회 정무위원회의 관련 보고에 출석한 자리에서다. 구 대표와 함께 나온 류광진 티몬 대표는 “티몬에는 자금 조직이 없다”고 말해 회사가 정상적인 내부 통제를 포기한 채 영업에만 매달리는 기형적 조직 운영을 해왔음을 시인했다.
이들의 발언은 한 해 거래액이 227조원(2023년)에 달할 만큼 서비스·유통 산업의 거대 축으로 급성장한 이커머스 뒤에 도사린 위험을 그대로 보여준 증거다. 이커머스 기업들이 판매자(셀러)에게 지급할 대금이 업체마다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지만 자금을 멋대로 관리한다 해도 감독은 허술해 사각지대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고객 돈을 유치해 굴리는 금융사들처럼 이커머스 기업들이 판매대금을 이용해 이자 수입을 올리거나 다른 사업에 빼 쓰는 ‘그림자 금융’의 리스크가 커진 셈이다. 티몬·위메프의 경우 판매대금을 40일 이상 지난 후 정산해 왔으며 다른 이커머스 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자 놀이 등으로 막대한 수입을 챙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국회에서 “큐텐의 자금 흐름에 강한 불법 흔적이 있어 수사 의뢰를 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제 “시장에서 반칙하는 행위를 강력히 격리시켜야 한다”며 “집단적 대규모 외상 거래도 금융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가 대금 지급 지연과 같은 단순 금전 사고가 아님을 시사한 것은 물론 유사 사태로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커머스 기업들의 일탈과 멋대로식 자금 운용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흩어져 있는 감독 체계를 정비하고 탈법 행위를 차단할 철저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서울회생법원이 티몬·위메프의 재산보전 처분 결정을 내려 티몬 4만 명, 위메프 6만 명 이상의 채권자들이 날벼락을 맞게 됐지만 이런 사태가 재발하면 피해자는 수십만, 수백만 명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