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남북군사합의의 일부 효력중지와 파기 이후 남북관계의 긴장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작년 연말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북한은 “남측의 역대 정부가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추진했다”며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남반부의 전 영토 평정’을 공언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이 지난 80여년의 남북관계를 ‘총화’하고 동족 사이의 특수관계론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영토평정’의 대상이라고 하는 건 핵을 보유한 ‘전략국가’의 자신감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핵사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냉전구도’에 편승해 정세를 주도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한 체제경쟁에서의 실패를 자인하고 남측으로부터 오는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에 대한 반감으로 2020년 6월부터 대남관계를 ‘대적관계’로 바꾸고 ‘제발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자’(김여정 담화 , 2022년 8월 18일)고 하면서 민족의 틀로 묶지 말고 각자의 길을 갈 것을 요구했다. 수령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한반도 두 국가론’을 펴면서 대한민국과 결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남측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법적 정비를 해뒀다.
남북한 최고지도자와 당국이 강경발언을 쏟아내는 지금, 한반도문제에 정통한 해외 전문가들은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우발적 충돌이 확전을 불러온 경우가 많다.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략국가’라는 자신감에 빠져 오판에 의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이 또 하나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북한이 대미, 대남 핵사용을 협박하면서 국지전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북한의 주장을 살펴보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 핵억제력을 주저 없이 사용할 것이라는 등 대부분 ‘조건부 핵사용과 전쟁론’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이 먼저 도발하지 않고 미국과 한국이 취하는 정책에 따라,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대답할 것”이라는 ‘대적대응의지’를 밝히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강대강’ 원칙에 따라 한미 군사연습을 계기로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실험과 훈련을 진행했다. 한국 정부가 표방한 ‘힘에 의한 평화’와 북한이 주장하는 ‘오직 힘’이 충돌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달라진 북한에 대한 맞춤형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힘에 의한 평화도 중요하지만 대화·외교를 통한 위협감소, 평화유지 노력은 더 중요하다. 작년 윤석열 정부가 ‘규칙기반 질서’, ‘가치연대’ 등을 강조하며 한미동맹과 한미일 관계에 힘썼다면, 올해는 주요국 선거에 따른 대응책 마련과 함께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북방지역에 대한 외교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윤석열 정부가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낮추고 대외신인도를 높여야 할 결정적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