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워킹푸어(working poor)’인 기택의 가족은 또 다른 워킹푸어인 문광의 가족과 영화 내내 갈등 구도를 유지한다. 같은 경제적 약자임에도 생존을 위해 서로 혈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여준 기생충은 잘 짜인 계급 우화라는 평을 받는다.
최임위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다. 27명이 다양한 업종과 직무를 대표하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 열띤 토론의 중심에는 저임금근로자와 소상공인이 있다. 극한으로 치닫는 최저임금 갈등 우화의 주인공들이다.
저임금근로자와 소상공인 간의 최저임금 갈등은 해마다 치열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주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했다며 근로자가 고용부에 신고한 건수가 1631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가 신고한 건수가 917건으로 전체의 56%를 차지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신고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50%를 밑돌았다. 그러다 2021년 51%로 오르더니 지난해엔 56%까지 늘었다. 소규모 카페 등 영세 소상공인과 근로자 간의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격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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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심의가 시작하기 전부터 이들은 갈등 구도를 형성했다. 양대노총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올해(9620원)보다 24.7% 오른 1만2000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노동계의 요구가 소상공인의 소득보다 많은 액수를 달라는 격이라며 동결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슬픈 건 이들의 갈등이 워킹푸어 간 생존을 건 혈투라는 점이다. 계속된 고물가 상황으로 올해 1월 물가를 반영한 직장인의 실질임금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 떨어졌다. 최저임금 월급인 201만원을 받는 근로자의 경우 물가를 반영하면 월급이 약 182만원이 되는 셈이다. 반면 2021년 기준 소상공인의 월평균 영업이익은 233만원으로 같은 기간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327만원)보다 낮다. 사실상 소득이 비슷한 저임금노동자와 소상공인이 서로 물어뜯고 있는 셈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기생충은 기택이 동익을 살해하면서 결말에 다다른다. 약자 간 혈투의 책임이 동익에게, 혹은 동익이 상징하는 무엇인가에 있다고 보여주는 듯하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혈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을 유일한 생존의 수단으로 여기게 한 현실에 주목한다. 최저임금 갈등의 해법은 최저임금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은 과잉 정치화되어 있다”며 “원인은 우리나라의 저임금근로자에 대한 지원제도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다른 나라보다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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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저임금근로자 연봉(평균임금 절반)은 3723만원이지만, 지원책을 통해 받는 최종적인 가구소득은 한해 6300만원에 달하고, 영국의 저임금근로자 연봉은 3121만원이지만, 최종소득은 4704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저임금근로자 연봉은 2488만원인데, 최종 가구소득은 2754만원에 그친다.
최저임금이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과도한 상승,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은 불가피하게 청년이나 고령층 등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퇴출을 초래하고 높은 청년실업률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정 교수는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예외적인 고용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건 저임금근로자 지원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근로장려세제(EITC)나 주택급여, 아동수당 등을 확대해야 적정 수준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완화하고, 과잉 정치화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