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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영화로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을 바탕 삼아 2008년에 내놓은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가 있다. 자기에게 책을 읽어주는 미하엘과 사랑에 빠진 한나(케이트 윈슬렛 분)는 직장에서 관리자로 승진하게 되자 갑자기 그를 버리고 사라진다. 세월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하엘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감시원으로 일한 죄로 전범 재판정에 선 한나를 발견한다. 자기가 쓰지 않은 보고서를 자기가 썼다고 거짓말을 하고 종신형을 받는 한나를 보고 미하엘은 비밀을 깨닫는다. 한나는 문맹이었던 것이다. 연인 곁을 몰래 떠나면서까지, 중형을 받아들이면서까지 한나는 자기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다.
올해는 세종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이 뛰어난 학자들과 함께 연구를 거듭해 만든 훈민정음을 1446년에 반포해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훈민정음의 특징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지면서 생겨난 한자나 로마 알파벳과는 달리 통치자들의 집중적인 연구 끝에 나온 고안물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의문을 가져보자. 왜 하필 15세기에 독자적 표기 체계가 한반도에 나타났을까. 어진 세종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어린 백성을 가엾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답은 오답은 아니지만 완전한 정답도 아니다.
최근 가장 권위 있는 세종 시대 연구자에 따르면, 사정은 이렇다. 훈민정음은 중국의 권력이 원(元)에서 명(明)으로 넘어간 격변기에 유교 가치를 지배 이념으로 내세운 조선 왕조의 고차원적 통치 전략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세종은 조선 엘리트가 중국의 글뿐 아니라 말에도 능통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당시 동북아의 보편 문화인 중국 문물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까다로운 명의 인정을 받아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안정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표의(表意)문자인 한자에는 중국에서 통용되는 올바른 소릿값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해법으로 세종은 한자의 정확한 소리를 적는 표음(表音)문자, 곧 훈민정음을 만들어냈다. 고유한 조선어를 표현하는 도구이면서 중국 문화와 소통하는 매개체로서의 문자를 고안했다는 면에서 세종은 참으로 넓은 시야를 지닌 고단수 군주였다.
이웃 사촌만 모여 사는 시골 동네에서야 글을 모르는 게 답답하고 창피한 일에 그칠지 몰라도 모르는 사람 천지인 도시에서 까막눈으로 살아가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생존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 힘으로 얻지 못하는 문맹자는 사람 구실을 하기가 쉽지 않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문맹자가 스스로 품는 모멸감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글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삶이 바뀌고 지배와 피지배의 구분선이 달라지는 역사적 사례가 많다. 문자의 운용은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통치 행위였다. 나라의 힘을 키우려면 문자가 꼭 있어야 한다. 하지만 통치자로서는 글을 깨쳐 똑똑해진 백성이 때로는 버거울 수 있다. 이만큼 문화와 정치는 문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훈민정음 창제의 바탕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어진 마음 이외에 중국 문화를 더 제대로 받아들여 권력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속셈도 있었다. 그렇다고 한글의 가치가 깎이지는 않는다. 연순처럼 글을 깨치는 즐거움을 쉽게 누리게 해 준, 그리고 까막눈임을 감추려고 불행을 떠안아야 했던 한나 같은 이들이 없도록 해 준 한글은 백성들에게 그 자체로 축복이었다. 훈민정음이 날을 정해 해마다 기려 마땅한 고귀한 문화유산임을 572돌 한글날을 앞두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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