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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병상찾아 삼만리”…경찰 정신응급입원 지원팀의 하루[경찰人]

이용성 기자I 2022.11.22 06:00:00

권용철 경기북부청 정신응급입원 현장지원팀장 인터뷰
병상 태부족…“최소 1시간 돌아야”
호송부터 입원까지…현장 판단도 고충
“치안 공백 없애기 위해”…오늘도 동분서주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베드(bed)전쟁’이요.”

25년 차 베테랑 경찰이자 정신응급입원 현장지원팀장인 권용철(52) 경위는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지난 8월의 어느 날 “나 좀 어떻게 해달라”는 한 통의 신고전화가 왔다. 다급히 경기 연천의 현장에 출동해보니 알코올중독 환자 A씨가 칼을 들고 어쩔 줄 몰라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권 경위는 A씨를 설득해 찾은 의정부 의료원에서 ‘긴급입원 필요’ 소견을 받았다. 문제는 병상이었다. 경기 북부권과 남부권, 서울 병원 모두에 전화했지만, 대답은 “병상이 없다”였다. 권 경위 팀은 결국 충남 공주로 향했다. 유일하게 병상이 남은 곳이었다. 최초 신고접수 후 11시간 만에야 A씨는 공주의 한 병원에서 긴급입원 절차를 밟았다.

경기북부청 생활안전과 생활질서계 정신응급입원 현장지원팀 팀장 권용철 경위가 지난 25일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용성 기자)
◇ 만성적인 병상 부족 “밤 출근하자마자 잔여병상 체크”

지난달 25일 이데일리와 만난 경기북부청 생활안전과 생활질서계 정신응급입원 현장지원팀장, 권 경위의 하루는 밤부터 시작한다. 지난 8월10일 개소 멤버인 권 경위의 임무는 야간에 위급해 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자를 안전하게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다. 그는 “출근과 동시에 ‘베드 전쟁’이 시작된다, 100여개가 넘는 병원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남은 병상이 있는지 체크하는 일부터 한다”고 말했다. 잔여 병상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자동 확인되지 않아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보건복지부 등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국 응급의료기관 408개소 중 정신질환자를 위한 폐쇄병동 가용 정보를 제공하는 곳은 88개소뿐이다.

실시간으로 잔여 병상이 바뀌기 때문에 권 경위팀이 겪는 고충은 더욱 커진다. 최근엔 잔여 병상을 확인하고 의정부에서 서울 은평구로 향했지만, 가는 도중 다른 환자가 먼저 들어와 병상이 다찼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상 찾아 삼만리’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다.

지난해 기준 경찰이 응급입원을 의뢰한 총 7380건 중 입원을 거부당한 사례는 517건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병실부족이 이유다. 권 경위는 “현장에서 보면 관련 신고 접수가 늘어나는 분위기지만, 병상 개수는 그대로”라며 “병상을 찾으려면 최소 1시간을 돌아다녀야 한다, 병상 부족에 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토로했다.

◇ 현장출동·호송·긴급 입원 전담…“치안 공백 막아”

임상심리학을 공부해 석사학위를 따고 응급입원현장지원팀에 자원했지만, 현장 대응에 곤혹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타해 위험성이 있는 이를 단순 주취 난동으로 볼지, 정신질환의 발현으로 봐야 할지 판단의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한다. 권 경위는 “그 사람의 히스토리(병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해도, 정신질환 때문에 자해나 타해를 시도하는지는 현장 경찰들이 판단해야 해서 책임이 무겁다”고 했다. 그는 “한 번은 자해를 시도한 이에 대한 신고를 받고 가보니 손목에 자상이 심했고, 우울증 이력이 있었다”며 “어렵사리 병상을 찾아갔지만, 의사가 ‘입원까진 안 해도 되니 내일 외래로 오라’고 해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최근에야 서울시와 서울경찰청은 국내 최초로 정신응급 합동대응센터를 시범 운영, 정신건강 전문요원과 경찰관이 협력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매일 ‘전쟁’을 치르면서도 그가 다시 힘을 내는 건 위험에 처한 환자를 살리고, 동료 경찰들이 치안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을 덜어준다는 사명감에서다. 그는 “우리 임무를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맡는다면 치안에 공백이 생길 것”이라며 “지역 경찰이 치안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국민이 더 나은 치안환경에서 살 수 있게 조금이라도 보탠다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긴급입원 환자 발생 시 현장 출동 및 상황 정리, 환자 호송, 입원 동의 등 전 과정을 담당해야 하는 경찰의 업무가 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분담하길 바란다고 했다. 권 경위는 “파주 등 일부 지자체에선 야간에 위기개입팀의 전문요원이 방문해 환자의 정신 감정을 한다”며 “이런 제도들이 더욱 확대, 활성화되면 현장의 애로가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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