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붓 벗 삼아 논 지 60년…"내 방랑의 자화상"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김용운 기자I 2014.12.05 06:42:00

김병기 개인전 "감각의 분할' 전
98세 현역 화가…회화·드로잉 100여점
최신작 '연대기' 동그라미에 삶 담아
"예술에 완성 없다…새로운 것 원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서 내년 3월까지

김병기 화백이 최근 작업한 신작 ‘열린사각형’(왼쪽)과 ‘가로수’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백수를 앞둔 김 화백이 올해 초 미국 LA의 작업실에서 그린 것이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 김병기 화백은 전시도록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작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게서 작품은 언제나 유동적이며 과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든넷이던 김 화백은 이제 백수를 바라보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정정한 목소리로 자신의 신념을 한번 더 강조할 수 있었다. “예술에서 완성은 없다. 완성을 위한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한국 추상화 1세대…98세 현역 화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내년 3월 1일까지 열리고 있는 ‘김병기: 감각의 분할’ 전은 미술관이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로 마련한 전시다. 이번 전시는 더욱 각별하다. 김 화백은 지난 회고전 이후에도 계속 붓을 놓지 않았고 아흔여덟 살인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최고령 현역 화가의 전시란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번 전시에서 김 화백은 회화 70여점과 드로잉 30여점 등 100여점으로 관객을 맞는다. 1954년 서울대 미대 재직 중 그린 ‘십자가의 그리스도’부터 1960년대 대표작 ‘유연견남산’, 1970년대 ‘산악도’와 ‘사라토가 컴포지션’, 1980년대 ‘산하재’ 연작과 ‘인왕재색’, 1990년대 근대 서양화가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유럽을 여행하며 작업한 ‘아를르(반 고흐를 위하여)’ 등 기행작품. 여기에다 2000년대 고국의 산을 화폭에 담은 ‘북한산 새한도’, 올해 그린 ‘열린사각형’도 나왔다.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일본 동경미술학교로 유학을 다녀왔던 부친 김찬영(훗날 김덕영으로 개명)의 영향으로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떠난다. 이곳에서 김환기(1913~1974), 유영국(1916~2002), 이중섭(1916~1956) 등과 함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 등 1930년대 일본의 신흥미술을 직접 체험한다. 당시 그의 동경 자취방에 드나들던 이들 중에는 시인 이상도 있었다.

해방 직후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지냈지만 한국전쟁 전 월남해 서울예고 미술과장, 서울대 강사로 후학을 길러내면서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미술비평의 초석을 놨다. 미국으로 건너간 건 1965년 한국미술협회 3대 이사장으로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석한 게 계기가 됐다. 이후 제도사 등으로 생업을 이어가며 한국 화단과는 거리를 둔 채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했다.

김병기 화백의 신작 ‘방랑자’(155x122cm·2013)


▲“내 그림엔 동·서양 형상·비형상 공존”

김 화백은 지난 2일 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 있을 땐 서양만 생각했는데 그곳에 가니 동양만 생각났다”며 그래서인지 “내 그림에는 동·서양, 형상과 비형상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 화백은 직접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1956년에 그린 ‘가로수’에 대해서는 “전쟁이 끝난 뒤 서울을 둘러싼 북한산이 남성적인 느낌보다 모성애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며 “텅빈 거리에 가로수만 보이는 서울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도판을 1년간 본 뒤 그렸다는 ‘산악도’는 “다시 보니 잘 그린 작품”이라며 “유년시절 어머니와 갔던 금강산을 모델로 했다”고 말했다.

최신작인 ‘연대기’(2013)에 대해서는 “일본 유학 시절 집에 놀러 온 이상이 그림 안에 동그라미가 보인다고 말했던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며 “다섯 개의 동그라미 안에 내 인생 역정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김 화백은 100세를 앞둔 고령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김 화백의 가족에 따르면 평소 소식하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생활하는 데다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것이 건강비결이었단다. 인생의 반은 고국에서, 나머지 반은 타국에서 보낸 김 화백은 “이렇게 멋있는 나라를 두고 그간 어디서 살았나 싶다”면서도 “모든 걸 다 체험했다고 사람들은 생각할 테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싶기에 아직도 방랑자라고 스스로를 여긴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드물게 인물 형상을 그렸다. 제목이 바로 ‘방랑자’였다. 김 화백은 “아마도 내 자화상인 듯 싶다”고 했다. 02-2188-6000.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