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 30년만에 ‘우지’ 꺼내든 ‘삼양1963’ 출시
농심 ‘신라면 블랙’과 국물·면·조리법 전면 비교
맛 완성도 농심 우위…삼양도 독특한 우지 풍미
우지라면 카테고리 개척한 삼양, 후속작 기대감↑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무엇이든 먹어보고 보고해 드립니다. 신제품뿐 아니라 다시 뜨는 제품도 좋습니다. 단순한 리뷰는 지양합니다. 왜 인기고, 왜 출시했는지 궁금증도 풀어드립니다. 껌부터 고급 식당 스테이크까지 가리지 않고 먹어볼 겁니다. 먹는 것이 있으면 어디든 갑니다. 제 월급을 사용하는 ‘내돈내산’ 후기입니다. <편집자주> | | 완성된 국물 모습. 삼양1963은 붉은 국물에 대파가 떠오르며, 신라면 블랙은 묵직한 국물 색감이 특징이다. (사진=한전진 기자) |
|
두 라면을 동시에 끓이자 향부터 갈렸다. 한쪽은 고소한 소기름 향이 피어올랐고, 다른 한쪽은 묵직한 소고기 풍미가 퍼졌다. 삼양식품(003230)의 신제품 ‘삼양1963’과 농심(004370)의 ‘신라면 블랙’. 둘 다 프리미엄 라인 제품이지만 국물의 결은 시작부터 달랐다. 국내 라면사의 대표 라이벌인 두 브랜드가 ‘소(牛)’라는 주제로 정면으로 맞붙었다. 과연 그 승자는 누구일까.
삼양1963은 지난 3일 출시 직후부터 주목받고 있는 제품이다. 이름처럼 1963년 선보였던 국내 최초 인스턴트 라면 ‘삼양라면’의 풍미를 현대적으로 복원하겠다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가장 큰 특징은 1989년 ‘우지(牛脂) 파동’ 이후 사실상 사라졌던 소기름을 다시 면 튀김 공정에 사용했다는 점이다. 30여년 만에 봉인을 풀고 ‘진짜 라면의 향’을 다시 끌어내겠다는 삼양식품의 의지가 담겼다.
신라면 블랙은 지난 2011년 등장한 농심의 대표 프리미엄 라면이다. 기존 신라면의 매운맛에 우골(소뼈)에서 우려낸 육수를 더해 설렁탕식 국물의 깊이를 구현했다. 제품명에 ‘블랙’을 붙인 건 한국식 고기국물의 영양과 풍미를 강조한 고급 라면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프리미엄 라벨을 상징하는 네이밍 전략이다. 출시 이후 프리미엄 라면 시장에서 오랫동안 정통 강자의 자리를 지켜왔다.
 | | 면과 구성품 비교. 삼양1963은 우지를 더해 튀긴 면과 심플한 구성, 신라면 블랙은 전통 유탕면과 다양한 스프팩이 돋보인다. (사진=한전진 기자) |
|
조리 과정에서도 성격이 갈린다. 삼양1963은 액상스프와 후첨 후레이크가 함께 들어 있는 2종 구성이다. 액상 특유의 진한 향이 빠르게 퍼지고, 후첨을 더하면 큼직한 대파 조각이 국물 위로 떠올라 직관적 인상을 남긴다. 신라면 블랙은 전첨·건더기·후첨 등 세 가지 스프를 순차적으로 넣는 정통 방식이다. 표고버섯과 당근, 파 등 다양한 건더기가 주는 풍성함은 그 어떤 라면보다 압도적이다.
가장 큰 차이는 국물이다. 삼양1963은 부드러운 국물에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짧고 강하게 스친다. 지방 점성이 심하지 않고, 여운도 비교적 가볍고 깔끔하다. 반면 신라면 블랙은 첫입부터 묵직한 육향이 깔리고, 기름 특유 둥근 매운맛이 천천히 퍼진다. 마치 삼양1963은 사리곰탕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은 듯한 맛이라면, 신라면 블랙은 소고기를 풍성하게 우려낸 설렁탕에 가까운 구성이다.
면발에서도 신라면 블랙 쪽이 좀 더 안정적이다. 삼양1963은 우지에서 비롯된 풍미가 인상적이지만, 끓인 뒤에는 후첨 스프에 덮여버려 존재감이 약해진다. 면발도 탄력이 크지 않고, 굵기도 조금 더 두꺼운 편이다. 반면 신라면 블랙은 꼬들함이 오래 유지되며 국물과의 균형도 좋다.
 | | 스프 구성 비교. 삼양은 액상· 후첨&후레이크 2종, 농심은 전첨·후첨·건더기 3종으로 차별화된다. (사진=한전진 기자) |
|
계란을 풀거나 밥을 말아먹는 등 부재료와 조화에서는 삼양1963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계란의 경우 신라면 블랙에 넣으면 국물이 더욱 묵직해져 느끼함이 다소 심해질 수 있지만, 삼양1963은 알싸한 매운맛과 어우러져 계란의 부드러움을 자연스레 살려준다. 밥을 말때도 삼양1963은 깔끔한 국물에 녹말이 잘 섞이며 부담 없이 넘어간다. 물론 이는 개인의 편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농심 신라면 블랙 쪽이 보편적인 입맛 기준에선 우위였다. 출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맛의 균형과 완성도가 충분히 다듬어진 영향도 있을 것이다. 반면 삼양1963은 이제 막 출시된 신제품으로, 평가를 받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다만 우지라는 금단(?)의 재료를 꺼내든 만큼,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렬한 맛으로 풀어냈다면 콘셉트에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성장 가능성 측면에선 삼양1963이 앞선다. 무엇보다 우지라는 강력한 서사를 지니고 있다. 우지 파동이라는 긴 설움의 시간을 견뎌냈다는 스토리는 그 어떤 마케팅보다 강력하다. 국내 라면 개발 경쟁이 극한까지 다다라 새로운 카테고리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지 라면이라는 장르를 다시 만들어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이번 삼양1963보다 앞으로 후속작의 맛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 | 두 프리미엄 라면의 패키지 디자인. 삼양식품 ‘삼양1963’(왼쪽)과 농심 ‘신라면 블랙’(오른쪽). (사진=한전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