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루프트한자의 이탈리아 국영 항공사 ITA,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과 관련해 조건부 인수를 승인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속사정을 유추해보자면 위와 같을 것이다. EU 집행위를 비롯한 세계 경쟁 당국은 피인수 항공사가 파산하는 것보단 탄탄한 항공사와의 합종연횡이 낫다는 점에 무게를 실어왔다. 특히 메가캐리어의 탄생이 곧 경쟁사나 후발주자에게 황금 노선을 확보할 기회를 마련해준다면 합병을 승인하는 모습도 속속 포착됐다.
이러한 뉘앙스에 힘입어 저 멀리 유럽에서는 항공사 간 통합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금이 기회’라고 보고 쏟아지는 항공사 매물에 눈독을 들이며 주판알을 튕기기 바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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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럽 항공그룹 IAG는 포르투갈 국영 항공사인 TAP 인수를 위해 관련 절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IAG는 영국 브리티시에어웨이와 스페인 이베리아 항공을 보유한 항공 그룹사로, 주요 주주로는 카타르 정부(카타르 항공)와 오스트리아 빈의 한 자산운용사, 영국의 한 대체투자 운용사가 있다. 회사는 최근까지 에어유로파 인수를 추진하다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불승인으로 계획을 접었다.
TAP은 라틴 아메리카와 남미 지역에서의 입지를 확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글로벌 항공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주요 매물이다. 이미 수년 전 시장에 매물로 등장한 바 있으나, 재정 이슈 등으로 매각이 불발되다가 팬데믹으로 손실 폭이 늘어나면서 재등장했다.
최근 유럽에서 경쟁당국 승인을 받아낸 사례도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독일 루프트한자의 이탈리아 국영 항공사 ITA 인수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루프트한자는 유럽 최대 규모의 항공사로, 지난 2000년부터 스위스항공과 오스트리아항공, 브뤼셀항공, 에어베를린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워왔다.
루프트한자는 지난 5월 이탈리아 경제재정부가 가진 ITA 지분 41%를 약 4800억원에 인수하는 동시 나머지 지분(59%)도 추가로 인수할 수 있는 콜옵션(매수청구권)을 확보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관련해 EU 집행위원회는 반독점 우려를 내비쳤고, 루프트한자는 일부 슬롯(항공기 이착륙 횟수)을 경쟁 항공사에 넘기는 방안을 제시하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 어딘가 닮은 M&A…대한항공도 ‘기대’
루프트한자의 ITA 인수는 과거 아메리칸항공이 일부 노선을 경쟁사에 넘기면서 US 에어웨이스 항공을 인수했던 사례와 닮은 부분이 있다. 아메리칸항공은 앞서 지난 2013년 US 에어웨이스를 인수하겠다고 선언했으나, 미국 법무부가 일부 공항에서 독과점이 형성될 수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두 항공사는 기존에 보유하던 미국 내 주요 도시의 슬롯을 경쟁사에 넘긴다는 절충안을 내걸면서 승인을 받아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 중인 대한항공도 이들과 비슷한 트랙을 밟고 있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 시 화물 부문을 분리 매각하고 유럽 일부 여객 노선을 내놓는 조건으로 양사 합병을 조건부 승인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지난 6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에어인천을 선정하고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현재 대한항공은 14개 경쟁 당국 중 미국의 승인만 남겨놓은 상태다. 일각에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시선으로 해당 합병 건을 바라보고 있으나, 자본시장에선 9부 능선은 넘어섰다고 보는 모양새다. 국내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경쟁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을 갖춘데다 미국 보잉과의 협력 관계 또한 끈끈하게 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 업계에선 이미 승인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눈치”라며 “그간 해외에서 승인된 사례를 보면 경쟁당국은 항상 파산보다는 합종연횡이 낫다는 스탠스를 보여왔다. 특히 경쟁사 및 후발주자들이 황금 노선을 차지할 계기를 마련해주는 이벤트나 다름 없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은 승인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