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담대 최대 90%" 꼼수 기승…국토부 등 본격 조사 착수

김기덕 기자I 2019.07.30 05:00:00

실수요자·유주택자 대출 규제 강화에
‘신고제’ 매매사업자 등록 방식 악용
고객에 ‘사업자 대출’ 권유 비일비재
당국 “실태 파악해 대응책 마련”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돈 빌릴 방법은 다 있습니다. 필요한 서류만 준비해오세요.”

도심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나눠주는 전단지나 지하철 역사 내부에 붙어 있는 ‘제2금융권 대출 광고문’을 보고 대출상담사에게 전화를 걸자 10분도 안 돼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대출 실행을 위해 묻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매수하려는 아파트값과 연봉, 신용등급(기존 대출 유무). 상담사는 곧장 필요한 금액을 계산하더니 보유 현금으로 먼저 매매 계약금을 내고, 나머지 금액은 신용 대출(최대 연봉 200%)이나 개인 사업자 대출로 자금 융통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건이 맞다면 제1금융권 대출 금리에 비해 연 2~3%포인트 높은 금리에 해당 집값 시세의 최대 90%까지 빌릴 수 있다는 얘기를 수차례 강조했다. 물론 일반 개인이 사업자 등록하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안심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대출 실행 금액과 상환 기간에 따른 연 이자율 차이와 사업자 대출의 위험성, 상환 의무 등은 설명하지 않거나 언급을 피했다.

◇규제망 피한 편법 대출...제2금융권 대출 쏠림

최근 서울 집값이 꿈틀거리자 규제망을 피한 편법 대출이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 이후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이 어려워지자 자금이 부족한 실수요자는 물론 유주택자를 상대로 꼼수 대출을 알선하는 현상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에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관련 부처는 제2금융권 불법 사업자 대출에 대한 실태 파악에 나섰다. 개인사업자 대출의 용도외 유용에 대한 집중 점검에 나선 것이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대출 규제를 우회하는 행태에 대한 대응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근 유주택자들 사이에서 사업자를 가장한 편법 대출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에 금융당국과 협의에 나서기로 했다”며 “정책이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비은행취급기관(종합금융회사·상호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상호금융 등 포함)의 부동산담보대출 잔액은 5월 말 기준 105조2540억원이다. 연이은 강력한 대출 규제 영향으로 연초보다는 3조원 가량 줄었다.

다만 세부 업권별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서민 및 소규모기업을 상대로 여수신 업무를 하는 상호저축은행의 가계대출 금액은 지난해 말 23조4674억원에서 올 5월 말 현재 24조5511억원으로 1조837억원(4.6%)이 늘었다. 같은 기간 농협·수협 등 지역 단위조합으로 구성된 상호금융의 가계대출도 5620억원(0.2%) 증가했다.

정부의 연이은 대출 규제 강화가 ‘제2금융권 대출 쏠림 현상’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는 2017년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40%로 묶었다. 이어 지난해 9·13 대책에서 1주택자가 추가 주택 구입을 할 때 대출을 원천 차단하는 ‘LTV 0%’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냈다.

이런 상황에서 제1금융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단위 농협이나 상호저축은행, 카드사, 외국계 은행 등에서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펼치고 있다. 강남권 일선 중개업소에서는 현금 유동성이 부족한 매수자들을 상대로 꼼수 대출을 권유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연말 입주하는 강남권 A아파트 분양권을 매수한 김모씨는 “현금이 1억원 가량 모자라 매수를 망설였는데 다수의 중개업소 조언대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인터넷 전문은행에서 1억여원을 신용대출 받았더니 승인까지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고 경험담을 소개했다. 그는 “부동산 매매사업자로 등록하면 훨씬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는데 추가로 대출을 받아 소형 아파트를 살까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다주택자 중에는 직접 부동산 법인을 설립하거나 사업자 등록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를 통해 주택을 처분할 경우 높은 세율의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해 상대적으로 낮은 법인세를 내거나 한도가 낮은 주택담보대출 대신 사업자 대출을 받기 위해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제2금융권 쏠림 현상은 연이은 대출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로 볼 수 있다”며 “당장 대출 실행이 가능하더라도 실제 이자와 원리금 등이 본인 소득 보다 높으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느슨해 불법영업 판쳐…금융당국 “시장 모니터링”

지난달부터 제2금융권에도 신용대출, 마이너스 통장 등 모든 가계대출을 규제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도입됐다. 가계 상환 능력에 비해 무분별하게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이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제1금융권에 이어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에도 최고 수위의 규제 압박이 가해진 것이다. 실제 올 1분기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의 DSR은 261%, 111%로 일반 시중은행(DSR 52.4%)에 비해 2~5배나 높았다.

그러나 아직 관리 감독이 느슨한 틈을 타 제2금융권들은 중개업소를 활용하거나 은행 내방객들을 상대로 관리지표 수준을 넘어서는 영업을 일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매매사업자 등으로 사업자를 내는 것은 구청 등에서 허가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제이기 때문에 손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대출 금리도 1금융권에 비해 연 2~3% 포인트 가량 높은 편이라 강남권 부자들에게는 별 부담이 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객을 상대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 가령 부동산 매매업자는 대출 일부를 상환해 LTV 40%(서울 기준) 이내로 들어오면 사업자 대출을 일반 대출로 대환할 수 있는데, 이를 전혀 갚지 않고 매매사업자를 폐업해도 된다고 설명하는 경우다. 또 집값 시세의 최대 80~90%를 대출받으면 연 대출 이자도 10%대로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사업자 대출을 갚지 않고 부동산을 매수한 후 일반 대출로 돌릴 수 있다는 건 명백한 위법 요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인 사업자 대출에 대한 사태 심각성을 인지하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며 “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구체적인 대출 사례와 시중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 조사한 후 대응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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