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군 해역에서 양식업을 하는 여성일 동막어촌 계장은 기자에게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최근 세월호 인양과정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로 인근 어민들의 미역·톳·전복 양식장이 수십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해양수산부는 원활한 피해보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어민들은 3년 전 세월호 기름유출 때처럼 외면받은 채 수년째 소송전만 계속될 것을 우려했다.
◇534가구, 55억 피해..어민 “즉각 보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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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차원의 피해액 집계는 진행 중이다. 지난달 해수부, 목포지방해양수산청, 국립수산과학원, 진도군청, 어업인 대표, 진도수협은 피해보상 지원 협의체를 구성했다. 협의체는 지난달 27일 상하이샐비지, 손해 사정인과 함께 첫 회의를 열고 피해 규모를 우선 파악하기로 했다. 상하이샐비지가 가입한 영국 보험사는 수산물 피해를 조사하는 손해 사정인으로 ‘협성검정’을 지정했다. 김영석 장관은 “피해 보상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피해보상을 놓고 이견이 불거지는 상황이다. 즉각적인 피해보상을 원하는 어민들과 업체 책임이라는 해수부 간에 입장 차가 크다. 소명영 동거차도 동육어촌계장은 “정부가 어민들에게 피해보상금을 선(先)지급하고 인양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비비를 투입해 정부가 쌀수매하듯이 기름 피해를 입은 수산물을 수매해달라는 게 어민들 입장이다.
어민들이 선(先)지급 방식을 요구하는 것은 인양업체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진도군청 세월호 사고수습지원과 관계자는 “인양업체 측은 직접적인 피해만 추산해 액수를 최소화할 것으로 보여 어민들과 입장이 다를 것”이라며 “기름 유출 보도로 이미 조도면 수산물이 아예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어민들은 3년 전 상황이 반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당시에도 기름유출 피해가 발생했으나 현재까지 피해보상액을 놓고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해수부 “인양업체 책임..세금으로 지원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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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 이번에도 허베이스피리트 사고 때처럼 어민들이 소송전에 내몰릴 수도 있다. 이희영 해수부 허베이스피리트 피해지원단 부단장은 “보험사 실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피해보상을 받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결과를 봐야겠지만 어민들이 보험사가 제시한 보상금을 놓고 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부는 선(先)지급 방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피해 원인제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나고 선례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광열 해수부 해사안전국장은 “예비비 등 예산 지원을 하려면 태풍·지진 등 불특정 다수가 대규모 피해를 입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정도가 돼야한다”며 “상하이샐비지라는 법적 책임 주체가 명확한데 국민 세금으로 지원할 수는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해수부는 가구당 최대 2000만 원까지 긴급경영안정자금 성격의 융자 지원(고정금리 1.8%, 1년 이내 상환)만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어민 측에서는 피해어업인 구제기금을 신설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협 관계자는 “그동안 유류 사고가 벌어지면 가해자들은 정당한 피해보상을 미뤘고 어업인들 생계는 위협받아왔다”며 “유류 피해를 유발한 업체로부터 부담금을 받아 해양오염사고피해어업인 구제기금을 신설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