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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가 지난 9일 인천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인천시의료원에서 인터뷰한 김진실 인천시의료원 감염관리팀장은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국내 감염병 의료체계가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고 볼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천시의료원은 인천공항과 가까운 공공병원으로, 우환발 코로나19 유입 1호 환자와 엠폭스 1호 환자를 모두 진료했다. 그는 “엠폭스 1번 환자도 저희가 받았다. 그런데 행정절차는 코로나19 1호 환자랑 똑같았다”며 “보고 체계 간소화한다고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서 의료기관에 도움을 준다고했지만, 이런 절차들이 다시 새로운 환자 생겼었을 때는 코로나19 때와 똑같았다”고 말했다. 일선 의료기관은 물론 행정체계 전반에서 아직도 엉성한 부분이 많단 이야기다.
간호사에 대한 인식은 물론 처우도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또 다시 재유행이 온다면 우리사회는 과거와 달리 일사분란한 대응이 가능할지 의문이 남았다.
△코로나19 영웅이라고 하는데 간호사에 대한 인식 개선이라던지 처우 면에서 달라진 점이 있나
-무례함은 본인 성향인 것 같다. 한없이 친절하고 상황을 잘 이해하는 분은 코로나19 전이나 후나 항상 잘 해주시고, 여전히 간호사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시는 분들은 또 그대로다. 좀 상처를 받긴해도 이런 부문은 크게 마음에 담아두고 그러진 않는다. 다만 업무 분장에 있어서 여전히 간호사에게 많은 부담이 남아 있는 점은 아쉽다. 모든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돌본 것은 아니었다. 결국 환자 옆에 있었던 사람은 간호사였다. 초기에는 방호복을 입는 훈련이 된 간호사들이 화장실 청소도 다 했었다. 필요한 물품 배달하고 밥 먹이는 것부터 기본적 업무 외에 청소 등 직원이 해야 될 모든 업무들이 간호사 몫이었다. 각각의 역할이 있는데 훈련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국에는 간호사들이 업무들을 모두 하는 건 불합리한 것 같다. 안정기가 되고 난 후엔 나머지 의료진들은 지금까지 잘해줬으니 또 결국 간호사들에게 일을 맡겼다. 그래서 시작부터 같이 했었어야 되는데라고 생각했다.
△코로나19 의료진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는 어떤가
-당시엔 많이들 힘들어 했다. 초반에 사실 신종 감염병이라고 하는 것 자체에 대해 다들 두려워했던 부분이라 불안함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인천의료원 다닌다는 것 때문에. 왜냐하면 신종 감염병이 저희 병원에서 많이 받다보니 주변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또 방호복으로 꽁꽁 감싸고 환자를 돌보고 나오면 금새 땀을 많이 흘렸다. 탈수 등 육체적 어려움도 컸다. 의료진에 대한 스트레스 관리해줘야 된다는 얘기들이 사실 많이 나오기는 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냥 서로 알아서 동료들끼리 한 잔 하는 걸로 풀거나 잘해보자 하면서 해결해 갔던 것 같다.
△가족들도 걱정이 많았을 것 같다
-초기엔 집에 돌아가는 것이 안 된다고 해서 병원에 방을 하나 만들어서 숙식을 했다. 확진자를 돌본 간호사들끼리 나와서 거기서 밥 먹고 자고. 가족들도 집에서 오는 걸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초반에는 다 그랬었다. 실질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보다 때론 이런 주변 상황 때문에 더 힘들었다.
△그래도 남아 있는 동기는 무엇인가. 직업이라서? 아니면 사명감이나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가.
-굉장히 업무의 양이 많고 보호구를 입고 들어간다라는 것 자체가 힘들다. 내가 빠지거나 내가 아프면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그게 고스란히 넘어가니까 그러한 것들에 대한 부담감도 좀 많이 컸었던 것 같다. 또 그냥 이게 우리가 해야 될 일이라고 아마 다들 생각을 한 것 같다. CCTV로 동료들을 지켜보면서 울컥할 때도 많았다. (울먹거림)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 분들 중 어떤 이유에 가장 많았나.
-제일 힘들어했던 부분은 가족에 대한 걱정이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단기로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1년을 넘어가고 장기화하다보니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맞는가라는 자기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환자 발생 추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보니 입원 환자가 많으면 거기에 다 투입을 했다가 또 환자가 쫙 빠지면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또 자기 휴가를 쓰면서 들어가야 했다. 병동에 환자가 없으면 또 다른 부서로 배치되기도 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 같다. 일반 환자 받으려면 청소도 해야 되고 소독 해야 되고 기자재를 다 닦아야 된다. 세팅해 놓으면 또 코로나19 확진자가 올라가고 그러면 또 다시 넘어가야 되고 이런 것들이 계획으로 되는 게 아니다보니 허탈하기도 했다. 저희 병원 같은 경우에는 1년에도 3~4번 했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사례는
-엄마와 소아가 같이 확진된 경우다. 그러면 엄마가 아프니 기저귀도 갈아줘야하고 젖병도 삶아야 되고 분유도 타줘야한다. 일상적으로 성인을 치료했을 때하고 또 다른 케어가 필요하더라. 그래서 그런 환자 온다라고 얘기하면 애들이 침대에서 떨어지면 안 되니까 방을 아이에 맞춰 침대를 다 빼고 매트리스를 깔고 준비를 해두기도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뒀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환자들이 많이 감사해하기도 했다. 또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확진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보통 그런 경우에는 거의 다 누워계신 상태다. 치매 환자들도 계시기 때문에 이런 경우엔 간호사들이 옆에 계속 붙어 있어야한다. 방호복을 입고 그 안에 들어가서 물도 먹여드리고, 같이 앉아도 있어주고 얘기도 해주고 그러면 환자들이 그런 부분들을 아주 편안해하고 좋아하셨다. 보호자나 간병인들이 출입이 어려우니까 그런 돌봄과정에서 정이 많이 쌓였었던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부분인가
-신종 감염병이란 게 마치 전쟁이 난 것처럼 가족을 다 갈라놓는구나 싶어서 지켜보는 것조차 너무 가슴이 아팠다. 가족들이 함께 확진된 경우 본인이 가족들에게 전파를 해줬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 부인이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셨는데 다 격리되어 있는 상황이니 돌볼 수도 없고 되게 많이 마음 아파했었다. 자녀분들도 다 격리된 상태였기 때문에 엄마가 혼자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화상으로 환자들을 보여드리기도 했는데, 그러면 우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코로나19 전후로 의료 현장에서 바뀐 점은
-병문안 이런 것들이 많이 줄었다. 오시는 분은 오시기는 하는데 그전에는 홍보를 해도 잘 안된 부분이었다. 전에는 아픈 사람 보러와서 자꾸 얘기해 주고 위로해 주고 이게 필요한 지 이랬었다면 지금은 저희 병원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 면회를 제한하고 있다고 하면 인정해주는 부분이 늘었다.